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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첫추억-조범구 감독의 1997년 부산
정리 오정연 2006-10-17

'영화를 계속 해도 좋다'는 격려 같던 시간

조범구 감독

1997년과 2004년, 부산영화제에서 내 영화를 상영한 것은 그렇게 두 번이었다. 2004년에 한국영화 파노라마 부문에서 상영된 첫장편 <양아치어조>는 사실 추가합격영화나 마찬가지였다. 제출기한에 맞춰서 믹싱도 안된 가편집본을 부랴부랴 제출했지만 연락이 없더라.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1주일인가 지나서 허문영 프로그래머한테 다시 연락이 온 거다. 떨어졌다고 해놓구서 다시 됐다는 건 뭐람? 대입시험에서 대기자 합격 통보를 받은 기분이었다. 하긴 공부 못한 애들 인생은 뭘해도 꼴찌다. 대학갈 때도 그러더니 하다못해 영화제 상영까지 꼴찌로 합격하다니. 두가지 감정이 공존했다. 꼴찌라도 틀어주는 게 어디냐, 싶은 마음과 이게 다 뭔가, 싶은 마음. 물론 부산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경험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제 상영 때 관객을 만나보면 일반 개봉 때보다 적어도 5배 이상은 긍정적으로 감정이입을 해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있어 부산에서의 첫경험은 1997년 첫 번째 영화 <장마>를 상영했을 때다. <양아치어조>는 이미 너무 많은 불합격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라서 무슨 일이 생겨도 그저 덤덤했지만 그때는 달랐다. 학교다닐 때 친구들 실습작품에서 내내 조명만 맡아서 다들 조명감독 하라는 걸, 그래도 영화를 한편은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만든 영화가 <장마>였으니까.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당시만 해도 한국 단편은 딱 10편을 초청하는 식이었고, 경쟁부문도 아니어서 프로그래머가 따로 연락을 하지 않으면 작품을 제출할 수도 없었다. 단국대 연영과 졸업하고 서울예전 문창과 1학년으로 다니고 있는데 이용관 프로그래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학교와 가까운 퍼시픽 호텔까지, 일부러 내가 편한 곳까지 찾아와주시고 귀빈 대접을 해주시고, 문창과 친구들은 영웅처럼 날 봐주고, 비행기표 받고, 호텔 방 받고, 영화도 내내 공짜로 볼 수 있고, 국제영화제란 이런 거구나, 라며 마냥 좋았다. 장미희씨가 수상 소감으로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말한 심정이 아마 딱 그랬을 거다. 게다가 함께 초청된 영화들은 송일곤 감독의 <광대들의 꿈>, 정지우 감독의 <생강>, 곽경택 감독의 <영창이야기> 같은 영화들었으니.

감독 한 명 당 3박4일씩 호텔이 나오는데, 마침 친한 친구 두 명의 영화도 함께 초청되는 바람에 그들과 날짜를 맞춰서 영화제 기간 내내 호텔에 묵을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세명뿐 아니라 (조)영각이 형에 씨네마테크 운동하시는 분들, 암튼 이름만이라도 알았던 사람들에 부산가서 알게된 사람들까지 모두 우리방을 쓰다보니 방이 완전히 동물농장이었다는 거다. 한번은 밖에서 술먹고 방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꽉차서 잘 곳이 없길래 화장실에서 쭈그려 잔 적도 있었으니까. 근데, 그래도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편보다 단편영화로 부산에 가는 게 더 어렵지 않나 싶다.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도 좋다는, 격려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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