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부산국제 영화제엔 딱 한 번 갔었다. 지난 해. 제 10회 부산국제 영화제. 그 전까진 부산에 다녀온 친구들로부터 영화제 후일담을 듣는 것이 영화제와 관련된 내 행사의 전부였다. 서울에 살면서, 그리고 소위 영화업에 종사하면서 그동안 부산영화제를 찾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그곳이 내게 무척이나 외로울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부산으로 내려가고 없는 텅 빈 서울에서 수음을 하거나 혼자 영화제와 관련없는 극장을 찾는 일도 외롭기는 매 한가지겠지만 사람들과 영화들로 북적되는 부산에서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이 매우 수줍게 느껴졌고 먼발치서 혼자 배회하는 그림만 떠올려졌던 것이다.
지난해는 달랐다. 나는 <피터팬의 공식>을 만들었고 그 영화는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안갈 수 없는 영화제. 처음 찾는 부산국제영화제. 숙소로 지정받은 그랜드호텔. 창밖으로 메가박스 극장이 보인다. 20분 후면 내 영화가 저 곳에서 상영될 것이다. 월드 프리미어다. 나는 호텔을 나서고 곧 극장에 도착한다. 객석은 꽉 차 있고 나도 자리에 앉는다. 영화가 드!디!어! 시작된다.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는 스크린 대신 나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살핀다(의지가 아니라 그렇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보다도 더 주의깊게. 그들의 작은 움직임과 숨소리가 나의 오감에 포착된다. 그것들은 일종의 신호로 다가온다. ‘뭐야 저거...’ 류의 불평불만으로... ‘내가 영화제를 만들면 절대로 관객이 볼 수 없는 영화제를 만들어야지... 무슨 소리???’
처음엔 잘 짜여진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인터뷰와 찬사들(쑥스럽지만). 영화제가 축제라고 한다면, 축제를 망치지 않기 위해 이런 칭찬정도는 서로 날려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피터팬의 공식>에 대한 반응이 나오고 각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초청이 이어진다. 다른 영화 볼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 끌려 다닌다. 후에 여러 영화제를 다니면서 느낀 것이지만, 부산만큼 활력 넘치는 영화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
정신없이 지내다가 문득 혼자 있고 싶어진다. 당연한건지, 희안한건지 외로움이 그리워진다. 살짝 파티에서 빠져나와 해운대 밤바다를 보고 앉는다. 소동은 등 뒤에서 일어나고 바다는 다음 작품을 성급하게 요구한다. <피터팬의 공식> 주인공을 맡았던 온주완에게 물었었다. “네가 연기자의 길을 가야만 한다면 앞으로 너에게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리겠다. 만약 연기자의 길을 포기한다면, 네 인생에서 딱 한 번 바다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무엇을 선택할래?” 선택이란 얻음의 기회가 아니라 포기에의 강요다. 똑같은 질문이 나에게 주어지고 이어 다음 작품의 대사가 된다. 모래를 털며 다음 작품 구상에 잠긴다. 그 순간 내 안의 영화제는 끝이 난다.
부산의 인연으로 여러 각국 도시를 여행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됐다. 영화제 순례다. 누군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영화제에 가서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왜 여기까지 와서 극장안에서 시간을 소비해야만 하는가. 대신, 각 나라의 이곳저곳을 여행한다. 프랑스의 쓸쓸한 노르망디 해변과 남아공의 쉬쉴루에 야생공원과 지평선. 눈덮인 로키 산맥 자락의 풍경 등은 지금도 장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각 나라 도시에서 만나는 여러 친구들. 그들 중 몇몇은 부산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고, 이번에 보지 못한 영화를 부산에서 꼭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외로움이 두려워 부산을 찾지 않으려는 계획을 취소한다.
내려가야겠다. 부산의 풍광이야 눈에 선하고 이번 아니라도 언제든 여행할 수 있으니 이번엔 맘 먹고 영화나 실컷 봐야겠다. 영화를 보면서 일부러 숨소리 크게 내고 몸을 과장되게 비틀면서 어딘가에 앉아 있을 감독들에게 농담 섞인 신호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