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천년에 한번 찾아온다. 인간의 간을 먹고 인간이 되려는 구미호 가족의 분투를 다룬 <구미호 가족>이 지난 9월19일 서울 용산 CGV에서 공개됐다. <순풍 산부인과>의 전현진 작가가 각본을 쓰고 신인 이형곤 감독이 연출을 맡은 <구미호 가족>은 익숙한 구미호 설화를 뮤지컬과 코미디로 풀어낸 혼성 장르 영화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어리숙한 구미호 아버지(주현), 어딘가 정신이 나간듯 과격하고 정신없는 아들(하정우), 항상 발정상태로 남자들을 노리는 첫째딸(박시연), 예쁜 아이의 얼굴을 둘러썼지만 어딘가 의심스러운 행동이 잦은 막내딸(고주연). 그들은 천년째 되는날 인간의 간을 먹고 완벽한 인간으로 탄생하기 위해 서울로 내려와 서커스장을 개업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똑똑한 인간들은 좀처럼 가족들의 계획에 말려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들의 몰래 카메라를 찍어서 팔아먹는 사기꾼 기동(박준규)가 우연히 서커스장으로 들어왔다가 첫째딸과 합방을 하게 된다. 그들이 구미호라는 사실을 알아챈 기동은 가족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서 돈을 벌 궁리를 하고, 가족들은 기동의 제안으로 서커스단 모집 공모를 내 싱싱한 간을 가진 인간들을 끌어들이려 한다.
<구미호 가족>은 호러/판타지와 코미디의 감수성을 안고서 ‘한국적 뮤지컬’이라는 드문 장르를 탐색하는 실험이다. 오랜 세월동안 공들여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기술적인 완성도는 흠잡을 곳이 별로 없다. 25분에 달하는 8번의 뮤지컬 장면은 최근 개봉한 몇몇 한국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조화롭게 편집되어있는 편이고, 특수효과 역시 적절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구미호 가족>의 실험은 거기서 그친다. 영화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뮤지컬 부분이 오히려 영화의 구멍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이형곤 감독은 "전통적인 뮤지컬 영화가 아닌 다양한 시도를 해고 싶었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지만, <구미호 가족>의 뮤지컬 장면들은 이야기를 연속시키고 캐릭터들의 감정을 구축하는데 좀처럼 제몫을 해내지 못한다. 관객의 귀를 잡아챌 훅과 기억할만한 안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15세 관람가의 <구미호 가족>은 오는 9월 28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