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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 장미희 집행위원장

“장애도 빈부도 차별없는 축제 함께 보실래요”

배우 장미희씨가 제2회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오는 14일 개막을 앞두고 무척 바쁘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이면서,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 인정심사 소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는 장씨는 국내 여배우 중에서 공적인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 영화 출연도 뜸해서 배우 활동은 접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장씨 말은 그게 아니었다. 8월31일 만난 장씨는 영화제에 관해, 또 배우로서 자기 생각에 대해 찬찬히 얘기를 들려줬다.

장씨가 집행위원장이 된 건, 자의 반 타의 반, 아니 타의가 좀 더 컸던 것 같다. 1회 때 집행위원장이었던 정지영 감독이 영화 연출 때문에 물러나면서 장씨에게 후임을 부탁했고 장씨는 거절했다. 그런데 마음속이 좀 찜찜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지낸 배우로서 그걸 사회에 갚는 방법이 뭘까. 교수 일도, 영화진흥위원회 일도 다 그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충분하지 않구나. 또 어른 아닌 어린이영화제라는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구석에 따라다녔죠.” 그 와중에 영화제 이사회에서 오라고 해 갔더니, 자기를 집행위원장으로 뽑아놓고 수락하라며 “들어다 앉혔”다.

맡고 나서, 장씨가 생각한 건 공적 자금으로 여는 축제인 만큼 계층, 지역간의 차별이 없게 하자는 것이었다. 지체부자유 어린이, 결손 가정 어린이들이 최대한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고양시 주변의 극장 없는 시를 찾아가 순회 상영을 하자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체부자유 어린이를 위한 오감극장, 오감놀이터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양주·동두천·포천·가평·연천 5개 도시를 돌면서 주요 상영작을 틀기로 했다. 그래서 고양시의 영화제는 19일 막을 내리지만, 행사는 30일까지 계속된다.

새로운 프로그램은 새로운 돈을 필요로 한다. 장씨는 경기도와 각종 재단, 어린이 관련 단체들을 찾아가 손을 벌려야 했다. “여배우 하면서 나이스하게 거절하는 것만 배웠는데,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하려니 그게 잘 돼야 말이죠. 협찬을 받으려고 가서는, 엉뚱한 얘기만 하고 온 적도 있어요.”그러나 이게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고 지내온 나에게 세상을 배울 기회”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만나면 무조건 이렇게 말합니다. ‘염치없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어서 부탁드립니다’라고.”

그럼 배우 활동은? 장씨는 최근 몇 해 〈보리울의 여름〉(2003년작)에 수녀로 출연한 걸 빼고는 활동이 없었다. “스스로 항상 배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신중을 기하면서 틈틈이 열심히 찾아보죠.” 장씨는 의미 있는 역할, 배우의 존재감을 전하는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 여배우들은 나이 들면 아무 역이나 해요. 굳이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니 자기 관리도 안 되고. 유럽 배우들은 안 그러죠. 작은 역이라도 존재감을 주잖아요.”

40대 후반에, 외모나 느낌이 장씨처럼 잘 관리된 여배우는 드물다. 장씨 말처럼, 여배우가 나이 들면 코미디나 귀신 역에 머물게 되는 한국 영화의 현실에서 장씨의 소신과 신중함은 중요하고 의미 있어 보인다.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쳐 보니까 왜 배우들이 이런 일 안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배우가 감성을 쌓아야 하는데 가르치면서 이걸 다 털어내게 되니까. 그러나 6~7년 교수 하면서 얻은 큰 장점이 있어요. 감성이 안 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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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종수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