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센티미터 20 Centimeters 라몬 살라자르 | 스페인 | 2005 | 113분
먼지 날리는 황무지에 개성있게 생긴 여자가 엎어져 있다. 그녀는 코를 골며 잠을 자는 중이다. 이름은 마리에타. 멀쩡한 가슴과 20센티미터나 되는 ‘물건’을 함께 가졌다. 그것을 제거할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마리에타는 거리의 연인으로 일한다. 그런 그가 땅바닥에서 코를 골고 있는 것은 기면증(갑자기 잠이 들어버리는 증세) 때문. 시도때도없이 푹푹 쓰러져 잠이 들 때마다 그녀는 꿈속에서 뮤지컬 히로인으로 변신한다.
트렌스베스타이트, 창녀, 난쟁이는 사회에 효용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하류 인생을 살면서 그들은 선천적으로 차단된 것을 욕망한다. 거대한 남성기를 단 마리에타는 여자가 되려하고, 친척의 유품으로 첼로가 생기자 난쟁이 토마스는 레슨이 받고 싶어진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보통 사람에겐 평범한 일이다. 수술을 해서 뭘 하고 싶은 거냐는 물음에 마리에타는 “당연하잖아. 진짜 여자가 되는 거지. 평범하게 공부도 다니고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거야”라고 답한다. 이들의 욕망은 소박해서 애틋하다. 춤과 노래의 향연이 펼쳐지는 트렌스젠더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20센티미터>는 <헤드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좌절된 희망을 처절한 분노로 표출한 헤드윅과 달리, 마리에타는 당당하고 쿨하게 희망을 실현해간다. 꿈 속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뮤지컬은 대리만족의 도구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 같은 삶이라도, 그녀는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하며 자아를 가꿔간다. 그녀가 화려한 히로인임은 현실에서도 변함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