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1월도 막바지에 접어들며 2005년의 끝이 저 앞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하는 때가 왔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한 해를 돌아보아야 할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DVD 업계는 최악의 시장 상황으로 2005년을 힘들고 불안하게 시작했으며, 그 끝도 힘들고 불안하게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올해의 한국 DVD 업계가 어쨌느니 하는 소리는 잠시 접어두자. 대신 좋은 점도 있지 않았느냐면서, 그 증거로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가 만났던 멋진 DVD 타이틀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좀 더 좋지 않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즐거움처럼,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야말로 어려울 때일수록 필요한 미덕이라고 믿어 본다.
DVD 토픽이 추천하는 장르 별 DVD 타이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즐거워져 보자. 혹시 아직도 접하지 못한 타이틀이 있다면 구매 또는 대여 가이드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UE
비록 극장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극장에서 내린 뒤부터 관객들과 통하기 시작했던 기묘한 영화다. 이런 영화가 겉과 속 모두를 꽉 채운 디스크 6장짜리 박스 세트로 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지금까지 꾸준히 영화를 사랑하고 지지해 왔던 관객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환골탈태 수준의 훌륭한 복원 화질과 사운드는 물론이고 삭제 장면이 대폭 추가된 3시간짜리 가편집본, 음성해설, 감독들의 전작 단편 영화, 심도 있는 인터뷰 모음 등 꼼꼼하게 준비된 부록은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다. 윈도우 미디어 HD 비디오 파일로 제작된 본편을 별도로 수록한 것도 화제가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팬들 사이에서 전설의 아이템으로 회자되었던 팬시북 복각본과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OST CD 수록은 거의 감동의 도가니 수준이다.
달콤한 인생
항상 이전에는 없었던 독창적인 영상미를 선사한다는 것이야말로 김지운 감독 영화의 매력일 것이다. 느와르를 표방한 <달콤한 인생> 역시 스토리는 공식에 충실하지만 그것을 둘러 싼 모든 것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다르다.
이러한 작품의 핵심을 DVD도 멋지게 되살려내고 있는데, 본편을 감독판으로 수록하고 있으며 감독과 제작진,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과 메이킹, 인터뷰 등을 통해 충실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총격전 시퀀스의 화려하고 박력 넘치는 사운드는 올해 한국 영화 타이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준이다. 필견.
남극일기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풍광, 가와이 겐지의 가슴 서늘한 음악. <남극일기>는 극장에서 오프닝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DVD가 기대되었던 작품이다. 새삼 ‘한국영화가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놀라움을 선사한 작품으로서 그 압도적인 스펙터클과 생생한 사운드가 안방극장으로 그대로 옮겨왔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때문에 극장 흥행이 생각보다 부진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일말의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국산 DVD의 퀄리티는 극장 흥행과 정비례해왔던 이유에서다.
다행히 DVD 마니아이기도 한 임필성 감독의 애착과 제작사의 노고로 <남극일기>는 한국형 레퍼런스 타이틀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타이틀로 선보이게 되었다. 디지털 색보정(DI) 기술을 십분 활용한 선명하면서도 균일한 영상과 돌비 디지털 5.1 EX 방식의 위력적인 사운드는 극장에서 보았던 충격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시청환경이 극장과 같은 대화면이 아니라는 점만 제외하면).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탭들이 참여한 음성해설도 영화제작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으며, 메이킹 필름과 김지운, 봉준호 등 한국 영화 대표 감독들의 인터뷰 등 본편 외 볼거리도 쏠쏠하다. 그 중 감독의 해설이 포함된 삭제 장면은 다소 난해한 영화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액션
배트맨 비긴즈
만화 속 주인공인 배트맨을 이렇게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다룬 영화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메멘토> <인썸니아>로 이미 인정받은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호연, 잘 짜여진 각본 등은 당분간 수퍼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왕도로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만화 원작 영화라는 컨셉트를 잘 살린, 만화책을 넘기듯이 보는 독특한 메뉴 화면 구성, 텀블러 질주 시퀀스와 클라이맥스 추격전의 중량감을 힘 있는 사운드와 서라운드 효과로 살려낸 사운드, 어두운 장면도 깔끔하게 보여주는 화질 등 모든 면에서 올해의 우수한 타이틀로 꼽을 만하다.
킹덤 오브 헤븐<글래디에이터>로 대박을 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다시 한 번 도전한 시대극이라고 하여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결과는 흥행 실패. 영화 자체는 <글래디에이터>의 ‘뭔가 뜨거운 것’이 조금 부족했지만 DVD는 그것을 만회할 만큼 뜨겁다.
십자군 원정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작품답게 영화와 역사와의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제작과정의 모든 단계를 빠짐없이 옮겨 담은 메이킹은 거의 집요할 정도. DVD 제작에만 웬만한 작은 영화 한 편 제작비를 투입했다고 하는데, 부록의 정보량과 치밀한 구성은 그에 값하는 훌륭한 수준이다.
격자 모양의 메뉴에서 각 제작 단계별, 시점별로 선택하여 볼 수 있는 기능은 DVD의 인터랙티브 기능을 잘 살린 것으로 평가 받았다. 화질과 사운드 역시 높은 수준으로, 대규모 전투의 긴장감과 박력을 멋지게 되살리고 있다.
쿵푸 허슬 UE
한 때 저질 코미디언으로 매도당하기도 하였으나 묵묵히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해온 주성치. <쿵푸 허슬> DVD는 그런 그가 대가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을 반증한다. 할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참신한 볼거리는 물론, 레퍼런스에 가까운 화질과 음질은 과거 주성치가 출연했던 작품들에 비해 월등한 수준이다.
극장 예고편만을 포함한 ‘썰렁한’ 일반판이 먼저 출시되어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으나 이후 이를 보강한 UE 버전이 선보여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는 주성치의 음성해설과 다큐멘터리 등 제작에 얽힌 비화가 공개된 부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쿵푸 영화 전문가가 진행한 주성치 단독 인터뷰 등 ‘성치 마니아’들을 위한 종합 선물세트라고 할만 하다.
드라마
오페라의 유령
원작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기도 하였으나 19세기 오페라 극장을 무대로 한 고급스러운 영상과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전설적인 음악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던 작품. DVD 역시 그런 기대에 부흥하듯 흠잡을 데 없는 AV 퀄리티로 완성되었다. 특히 국내판 DVD는 미국판에도 없는 DTS 트랙을 수록, 보다 우수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는 물론 샹들리에 추락 장면에서의 강렬한 효과음 등, 집에서 편안히 감상한다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
제작 관련 메이킹 외에 독특한 부록들로도 관심을 모았다. 원작 팬들을 배려한 사라 브라이트만 주연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제작진들이 영화의 주제가를 코믹하게 부르는 ‘스탭 합창’은 언제 보아도 즐거운 부가영상이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에 출연했던 국내 뮤지컬 배우들의 음성해설은 DTS 트랙과 함께 국내판 DVD만의 장점으로 각인된다. 이쯤 되면 원작과는 다른 영화가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타이틀이 아닐까 싶다.
인게이지먼트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전작 <아멜리에> 역시 DVD로서 우수한 퀄리티를 보여줬지만 <인게이지먼트>는 그것을 한 단계 더 뛰어넘는다. 할리우드 막대한 자본과 최신 디지털 색보정 기술이 도입된 덕분에 시종일관 부드러우면서도 생생한 화면을 펼쳐 보인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실사로 찍은 장면 곳곳에 알게 모르게 CG 영상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는 제작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인데 기록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20세기 초 파리의 풍광을 실제처럼 재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위화감 없이 화면에 어울린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효과음과 바달라멘티의 신비스러운 선율 역시 우수한 사운드로 재생된다. 감독의 완벽주의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메이킹 다큐와 음성해설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들이다. 프랑스 영화도 이제 할리우드 못지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타이틀로서 첫 손에 꼽을 만 하다.
카니발
올해 정책적으로 TV 시리즈를 밀었던 워너 브라더스. 그 가운데 <카니발>은 아쉽게도 그 훌륭한 완성도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한 타이틀이다. 수많은 걸작 시리즈를 양산한 HBO가 제작한 이 서사시는 선과 악이 벌이는 기나긴 대결을 다양한 등장인물과 촘촘한 플롯으로 연결하여 빚어낸 고품격의 작품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대공황 시대판 <트윈 픽스>’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어울리게 상스럽고 아무나 볼 수 없는 강한 묘사들도 속출한다. 그러나 일단 처음 한 두 편이라도 본다면 평범한 일상에 지친 우리들을 그 동안 본 적이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실임을 믿지 않을 수 없는 <카니발>만의 독특한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막강한 중독성을 지닌 드라마. 웬만한 블록버스터 못잖은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SF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스타워즈>는 에피소드 4, 5, 6 뿐만 아니라 프리퀄 3부작 모두 발매 당시 최고 수준의 화질과 음향을 갖춘 DVD 타이틀로 유명하다. <시스의 복수> 또한 다르지 않다. 오프닝의 압도적인 우주전쟁은 잡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깨끗한 영상과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전투 상황에서의 화려한 색감은 HD 영상으로 보기 전까지는 DVD 타이틀이 그 매력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부록 또한 한 번에 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방대한 양을 수록하고 있어, 영화 제작 과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안내하고 있다. 단지 일반 영화 관객에게는 너무 전문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조지 루카스와 기술 스탭들의 음성 해설이 다소 늘어지긴 하겠지만, 나머지 부가 영상에서 현재 디지털 기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프리퀄 3부작이 에피소드 4, 5, 6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DVD 타이틀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더 좋다. <시스의 복수>는 시청각적 만족도와 부가영상의 짜임새에 있어서 6부작 가운데 최고라 불릴만한 '명품 DVD'이다.
우주전쟁
올해 가장 많은 화제와 찬반양론을 이끌어 내었던 블록버스터. 하지만 영화의 내용이니 비평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일단 떠나 DVD의 완성도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특히 사운드는 감상자의 얼을 빼 놓을 지경이다. 이것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관심이 있다면 직접 보는 수밖에는 없다. 외계인의 침략 도구인 트라이포드가 굉음을 내며 땅에서 솟아오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올해 최강의 음향 체험이 시작된다.
부록은 이것저것 많지만, 어쩐지 통상적인 칭찬 릴레이와 지루한 인터뷰의 모음 이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본편만 알뜰하게 들어간 1편만 갖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공포
어셔가의 몰락
DVD의 좋은 점은 뛰어난 화질과 음질의 최신 영화를 보는 것 보다 오히려 충실히 복원된 고전 영화를 보는 데 있다. B급 영화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 코먼의 명작 공포 영화 <어셔가의 몰락>도 그러한 경우 중 하나. <벤허>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같은 막강 화질의 복원 작품은 아니지만, B급 영화로서 최대치를 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준수한 퀄리티다.
애드거 앨런 포 원작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살린 시네마스코프 영상과 명배우 빈센트 프라이스의 괴연 등 최근 공포 영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살아있는 작품. 빈약한 부록을 탓하고 싶기보다 출시 자체가 고맙게 여겨지는 타이틀이다.
혈의 누
<영원한 제국> 이후 국내에서 매우 보기 드물었던 스릴러 사극이라는 점만으로도 일견의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다. 섬뜩한 특수분장과 시각효과는 이제 한국 영화의 유혈 묘사가 할리우드나 이탈리아 등 신체 손상의 대가들이 포진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는데, 극중 등장하는 다섯 가지 극형 장면은 관객들의 찬반양론을 야기하기도 했다.
화질과 사운드 모두 퓨전 사극의 분위기와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충실한 수준이며, 직금도의 해설이나 고증 과정 등을 꼼꼼하게 해설한 부록과 음성해설도 알차다. DVD로 보는 장르 영화의 즐거움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는 수작 타이틀이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오리지널의 설정만을 따와 ‘출력 과다’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영상과 사운드를 뽑아낸 리메이크. 어두운 장면이 잔뜩 들어 있지만 사물의 표면 질감까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선명한 화질과 머리통을 날리는 해머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상징물인 전기톱 소리를 소름끼치게 들려주는 사운드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일반판과 부록이 대거 추가된 특별판의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어 선택의 폭도 넓다. 하지만 희대의 연쇄 살인자 에드 게인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점에 착안, 영화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고 정보량도 뛰어난 다큐멘터리와 제작 과정이 수록된 특별판을 그냥 지나치기는 참 아깝다.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설명이 필요 없는 픽사 최고의 걸작. 올해 출시된 애니메이션 타이틀 가운데 최강급의 화질과 사운드는 물론, 제작진의 재치가 넘치는 재미있는 부록이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수퍼 히어로 가족의 막내 잭잭의 알려지지 않은 활약을 다룬 단편 <잭잭의 공격>과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모험>은 필견. <잭잭의 공격>은 의외로 출연 비중이 낮았던 잭잭의 숨겨진 놀라운 초능력을 볼 수 있는 포복절도의 모험담이며,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모험>은 반드시 새뮤얼 잭슨의 음성해설을 켜 놓고 볼 것.
카우보이 비밥 5.1ch 박스세트
일본인들의 상술이 빗어낸 우려먹기 상품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카우보이 비밥> 팬들에게는 은총과도 같은 타이틀이다. 스타일리시 영상의 최고봉이라고 할 만한 비주얼과 칸노 요코의 고급스러운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애니메이션으로서, 기존의 2.0 채널 사운드로는 어딘지 부족함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 전체 26 에피소드 중 6편만을 골라 5.1 채널화한 ‘컴필레이션판’이 나올 때부터 5.1ch 박스세트의 출시는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총소리와 폭발음은 더욱 박력 있게 울려 퍼지고 있으며,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사운드트랙은 더욱 감미롭고 섬세하게 재생된다. 화질면에 있어서는 기존판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출중해진 사운드만으로도 재구매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정도. 더욱이 국내 제작사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우리말 5.1 더빙 트랙까지 담겨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하고 있다. 세 에피소드에 수록된 감독, 성우들의 음성해설은 잡담 위주로 흘러가지만 별도로 포함된 해설책자가 제작비화를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카우보이 비밥>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주저 말고 이 타이틀로 그 명성을 확인할 것. 5.1 사운드의 <카우보이 비밥>을 체험해보지 못했던 사람도 꼭 챙겨볼 것을 권한다.
아키라
제작된 지 17년 만에 마침내 우리 곁에 찾아온 전설의 재패니메이션. ‘태풍소년’이라는 제목으로 불법 개봉했던 사실이나 해적판 비디오로 익숙한 작품이기도 하나, 이렇게 정식 DVD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팬의 입장에서는 감개무량한 일이다. 오랜 기다림을 보상이라도 하듯 이제껏 미국, 일본 등 해외 각지에서 발매된 판본을 종합하여 최상의 퀄리티와 풍성한 부록으로 무장한 것도 반갑기만 하다.
<아키라>를 제대로 된 영상매체로 제대로 감상한 소감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라는 것. 필름 잡티가 비교적 심하게 눈에 띄는 화질이기는 하나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영상임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또한 21세기 들어서 새로이 리마스터링된 환상적인 DTS 음향은 작품의 새로운 발견으로서 <아키라>가 단지 비주얼만 압도적인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디지털 기술이 정착화 되기 이전 수작업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담은 제작과정 부가영상도 볼거리다. 콘티 영상과 제작과정 데이터를 빼곡히 담은 3번째 디스크까지, 가히 <아키라>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할 수 있는 타이틀로서 재패니메이션 마니아들이라면 필수소장해야할 아이템이다.
올해의 리마스터
배트맨 앤솔로지
1989년부터 1997년까지 공개된 배트맨 영화판 4부작을 새롭게 리마스터하고 다양한 부가영상을 추가하여 내놓았다. 기존 타이틀이 1997년 DVD 시장의 여명기에 출시된 것이어서 지금 기준으로는 확실히 떨어지는 사양인데, 이번 ‘앤솔로지’ 재발매판은 그러한 아쉬움과 8년이라는 오랜 기다림을 상당히 보상해 줄 수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감독들의 음성해설과 메이킹 다큐멘터리, 삭제 장면 등 팬들을 궁금하게 했던 부록들이 잔뜩 들어있는 점. 특히 1편의 메이킹은 원작을 제대로 알고 있는 제작진이 10여년에 걸쳐 악전고투해 온 경험담이 가득한 감동의 명편이다. 그 동안 배트맨 팬들은 물론 많은 DVD 마니아들의 재출시 요구를 받아 온 영화들 가운데 하나로서, 올해는 그들이 드디어 소원성취한 해로 기록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