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DVD Topic > DVD 리뷰 > 국내 타이틀
강명석의 Shuffle! <이승환 ‘끝장’ 콘서트>
강명석(기획위원) 2005-11-04

바보의 열정이 만들어낸 마스터피스

얼마 전 아는 기자분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 올해를 정리하는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음악 쪽에서 트랜드를 이끈 가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그 때 필자가 할 수 있었던 대답은 “딱히 없는데요.” 뿐이었다. 트랜드가 없는 게 트랜드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올해는 음악계에서 주목할만한 새로운 흐름 같은 것도, 시장을 뜨겁게 달군 뮤지션도 등장하지 않았다. 김종국처럼 오락프로그램과 앨범 활동을 병행시켜 인기를 얻거나, SG 워너비처럼 R&B 창법을 쓰는 발라드 앨범을 내놓아 이지리스닝을 좋아하는 20~30대 발라드 팬에게 앨범이나 컬러링 판매를 하는 것이 오히려 트랜드로 보였을 정도다. 최대한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으로 승부한 가수들만 그나마 성과를 거둔 셈이다.

물론 이는 요즘 음악계가 최대의 불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앨범이 팔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예 음악이라는 장르 자체가 과거처럼 열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더 문제다.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좀처럼 열광하지 않는다. 대신 mp3 플레이어에 수많은 음악들을 다운받아 놓고, 그것들을 생활의 BGM으로 쓸 뿐이다. 그러니 과거처럼 혁신적인 시도에 열광하지도,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음악을 한 신인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무난하게, 듣기 편한 음악을 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는 가수들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음악들에는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만 해도 새로움이란 뮤지션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전작들과 어떤 점이 차별화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돌 그룹도 자작곡을 시도하고, 보도 듣도 못한 장르라도 내세워야 했던 것이 그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음악에 '큰 돈'을 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음악을 정성들여 만들어도 그걸 사주는 사람도,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좀처럼 없으니 말이다. 그 돈 들일 거면 차라리 드라마 제작사라도 하나 차려서 TV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노력하는 쪽이 더 낫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음악 컨텐츠에 어떤 투자를 한다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된다. 과거에는 시장에서 얼마큼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기획사건 과감한 투자를 고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이익을 생각하고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바보와 같을 정도로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수 있다. 이승환이 작년 내놓은 첫 번째 라이브 DVD <끝장>은 그런 바보의 열정이 만들어낸 마스터피스다.

2003년 용산 전쟁기념박물관에 있었던 동명의 콘서트를 편집해 옮긴 이 DVD는 한국 대중음악 공연 기술의 끝을 보여준다. 이 공연에서 사용하는 음원들은 인위적인 믹싱이 최대한 배제되었다. 심지어 공연 중 단 한번 잠깐 실수로 나온 하울링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까지 그대로 담겨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공연의 원음을 살리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사운드가 모두 미세한 부분까지 살아있을 정도로 생생하다. 국내의 대부분의 타이틀이 가수의 보컬 능력이나 연주력 때문만이 아니라 공연 사운드의 전반적인 문제들로 인해 DVD 타이틀을 출시할 때 수많은 소리들을 자르고 붙이며, 그 와중에 현장성이 사라지는 반면, <끝장>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공연장의 그 소리를 그대로 듣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특히 수많은 사운드의 향연이 펼쳐지는 '춤바람' 트랙에서 DJ의 스크래치 사운드를 선명하게 살려내 오른쪽 레어 스피커에 두거나, 드럼 솔로연주에서 드러머가 연주하는 드럼 세트의 방향에 따라 양쪽 프론트 스피커를 정확하게 나누는 부분 등은 국내 공연은 물론 해외 공연 타이틀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소스 자체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햇빛과 화사한 조명등을 통해 공연 내내 다채로운 색감을 안겨주는 비주얼 역시 실내 콘서트에서는 감상할 수 없었던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승환의 곡 중 가장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너의 나라'와 '나의 영웅'을 결합한 트랙에서 이승환의 등 뒤로 등장하는 초대형 날개는 그 자체로 장관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단지 기술적인 완성도로 설명될 수 없는 이승환의 어떤 '의지'에 있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각 곡마다 완벽한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공연을 진행시켜나간다. 어떤 곡이든 확실한 클라이맥스가 존재하고, 그것이 한 데 모여 공연 자체가 스펙터클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하나의 흐름을 가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는 이승환이 15년 이상의 공연활동을 통해 축적한 수많은 노하우들이 살아 숨쉰다. 그의 공연이 단지 콘서트라기보다는 팬들과 함께 4시간 이상에 걸친 '축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비극적인 사실은 이승환의 이 모든 시도는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열정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이승환이 <끝장>에 수많은 돈을 투자하고, 앨범마다 당대 최고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해도 더 이상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끝장>의 판매량은 그리 좋지 못했고, 앨범 역시 과거처럼 밀리언셀러를 노리긴 힘들다.

이승환의, 혹은 지금도 현실에 관계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어떤 뮤지션들의 열정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단지 돈 몇 만원 내면서 그가 계속 이런 길을 가길 원하는 게 미안해지기 시작해졌다. 아, 그리고 이승환은 최근 또다시 바보 같은 일을 벌였다. 자신과 자신의 소속사 드림팩토리 소속 뮤지션의 거의 모든 앨범과 한정 생산한 피겨까지 담은 박스 세트를 내놨다. 1,000세트 한정으로 내놨는데, 다행히도 매진됐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1,000명쯤은 그의 바보 같은 열정을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걸까. 다행이라면 참 다행이고, 이런 것들이 10,000개 한정은 될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왠지 우울해진다.

메뉴 화면

스탭들의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