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10회(2005) > 영화제소식
[잊지 못할 게스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문석 2005-10-10

귀여운 당신이 미래의 거장이였다니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한가해 보이는 곳은 PPP(부산프로모션플랜) 현장이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오는 매표구나 아무리 발돋움해도 무대 위 상황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야외무대와 달리, PPP 현장은 고즈넉하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PPP는 시나리오 단계, 또는 그 즈음에 있는 영화가 해외 투자자와 배급자를 만나는 자리인만큼, 드러나는 ‘액션’은 테이블 위의 대화 뿐이다. 뭔가 ‘건수’를 건져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 여기만큼 난감하고 지루한 곳은 없다.

2002년의 PPP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홍콩의 진가신, 중국의 왕차오, 한국의 민규동 감독 등이 참여했지만, 그들은 미팅룸에서 조용히 대화만을 나누고 있었을 뿐, 기사거리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난감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호텔 로비가 내려다 보이는 2층 난간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무렵, 서성이는 귀여운 타이풍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나이며 외모며, 감독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리하여 타이 감독의 매니저 쯤으로 여기게 된 그와는 PPP가 열린 사흘 내내 눈을 마주쳤다. PPP의 마지막날, 누군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관계자를 찾아가 ‘지금 시간 있는 감독 한명만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그는 타이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아핏차퐁…? 2001년 타이 출장 때 타이에서 떠오르는 감독 중 하나라고 들었던 이름이며, 2002년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상을 받았고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친애하는 당신>의 감독이다.

에잉? 그의 얼굴을 보고 당황한 것은 아핏차퐁이 바로 그 귀여운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이 예쁘장한 청년이 서른두살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영화를 ‘대략난감’으로 본 기자의 허접같은 질문에 총기어린 눈으로 신중하고 진지한 답을 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정확히는 몰라도 보는 이의 숨을 턱턱 가로막는 느낌의 영화처럼, 그의 말 또한 예술이었다. 그는 “<친애하는 당신>은 풍경에 대한 영화이며, 사람은 그 풍경의 한 요소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풍경도 하나의 캐릭터다. 풍경도 연기를 한다”고까지 했다. 그와의 1시간은 마치 영화에 대한 강좌 같았다. 그러고도 못 다한 말이 있어선지, 그는 시간을 더 갖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눈앞의 기사 마감만 생각하던 나는 냉정히 취재노트를 덮었다.

아쉬움이 밀려온 것은 그 한참 뒤였다. 그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네아스트 중 하나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안 일이다. 미래의 거장과 오랫동안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놓쳐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제 그와 그렇게 넉넉하게 시간을 가지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3년 전의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꼭 한번 다시 만나 그때 채 듣지 못한 ‘강의’를 마저 듣고픈 심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