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는 ‘오노 후유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소설보다 애니메이션이 조금 더 유명한데 아무래도 글로 읽는 것보다 이해가 빠른 영상매체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십이국기>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NHK에서 방송이 되었다. NHK는 일본의 공영방송이라는 대표성 때문에 대중성과 교육성을 겸비한 애니메이션만을 방송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주로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 많이 방송된다. 그런데 무슨 의도로 <십이국기>를 방영하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솔직히 이 작품은 대중적이지도 않고 교육적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람이 있다. 비교적 고연령층에게 어필하는 내용과 장대한 스토리는 어린이용으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원본 소설 자체도 굉장히 어려운 한자가 많아 어지간한 한자실력으로는 읽기가 버거울 정도이고, 등장하는 인물 수도 상당하여 적응하기 쉽지 않다. 소설 자체는 치밀한 설정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가진 훌륭한 작품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 모습은 어떤가? 탄탄한 원작 덕분에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여고생 요코가 어느 날 십이국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는 점은 분명 여타 다른 판타지 소설과 비슷하다. 하지만 요코가 다른 세상에 끼어들면서 생기는 파장은 다른 작품처럼 단순하지 않다. 잔잔한 수면 위에 돌 하나가 떨어졌을 때 수면 전체로 퍼지는 물결처럼 요코의 등장은 이 작품에서 큰 물결로 작용한다.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처럼 선한 사람 만나서 금방 내용이 술술 풀리는 게 아니라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예를 들면 김혜린 작품의 주인공급이랄까).
그런 가운데 성격 장애까지 보이는 주인공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지만, 점점 서서히 성숙해지는 과정이 흥미롭다. 또한 원작 소설에는 없던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원작의 팬이라면 못마땅할 수도 있지만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차별된 무엇이 없다면 스폰서들의 호응을 받을 수 없어 곤란하다. 그래서 가끔 원작을 망치는 애니메이션도 나오는 것인데 <십이국기>는 적어도 그런 점에서는 안심이다. 초반 5~6편 정도만 잘 적응하면 나머지 뒤쪽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이번에 발매되는 박스 1을 다 보게 되면 박스 2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질 것이다.
안정된 퀄리티를 보장하는 방송국에서 방영이 된 만큼 화질에는 큰 문제가 없다. 본편 전체가 프로그레시브 영상으로 수록되어 다른 TV 시리즈 DVD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곽선 계단 현상 등의 약점이 없다. 다만 화면이 너무 정갈해서 차갑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 돌비 디지털 스테레오의 음향은 아주 적절하다. 스테레오의 좌우 분리 효과를 최대한 잘 살리고 있다. 대사도 또렷하게 전달되고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의 음악 역시 스피커를 타고 막힘없이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감미로운 오프닝 음악은 작품이 완결될 때까지 바뀌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가영상은 여타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처럼 빈약한 편이다. 박스 1에는 논 크레딧 오프닝, 엔딩과 감독 및 캐릭터 원안을 담당한 이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