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올셰이를 미처 만나기 전에, 이런, 어느 제약회사의 달력으로 인상파를 먼저 만났다. 세잔과 모네. 익숙하지 않은가. 식탁 위의 정물화. 가벼운 위트로 삶의 한 단면을 슬쩍 건져올린 카르티에 브레송의 1932년작 <생 라자르 역>과 더불어 모더니티의 생생한 국면을 포착한 모네의, 달력 속의 <생 라자르 역>을 작업실 귀퉁이에 걸고나서, 신사년 1월의 서른한개 숫자를 들여다보니 과연 멋진(이런 제길!) 감정소비의 미장센을 연출한 듯, 간지럽다. 저 다비드와 앵그르풍의 왕정미술파들이 ‘노약자와 임신부는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풍자화로 경멸했던 낙선 그룹이 오늘날 아주 익숙한 문명화의 소도구로 전락하고 마침내 봄날 커튼 새로 갈 듯이 하나의 관습적인 인테리어 제품으로 눅눅해져버린, 이 아이러니를 ‘내 책상 위의 달력’이 그대로 말해준다.
더불어 생각건대 찌그러진 진주, 그 경멸의 바로크가 오늘날 고전양식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것 역시 하나의 문명적 아이러니다. 붉은 머리의 사제 비발디. <사계>가 요즘처럼 달콤하면서도 약동적인 감정소비의 선율로 들려지고 있다면 아마 관뚜껑을 열고 뛰쳐나오지 않을까. 놀라운 기예의 소유자이자 말하자면 거의 최초로 인간적 신 교황과 신적 인간 왕의 세계로부터 잠시 비켜서서 인간의 감정을 현에 실음으로써 그는 음악사의 앞머리를 장식했지만 그가 자기 시대와 나누었던 원초적인 대화는 오늘날 완전히 잊혀져버렸다.
<반칙왕>과 ‘채림쩜하이홈쩜컴’과 ‘서커스 매직 유랑단’과 ‘신바람 이박사’와 ‘갈아만든 배’와 ‘파티-투나잇’과 <다찌마와 Lee>가 이중나선 구조로 지난 한해의 키치적 코드를 이어갈 때, 일부러 나는 바로크, 그것도 하인리히 쉬츠까지 훑어들으며 감각의 탈주를 무의식화했던 기억마저도 실은 아이러니라면, 세살배기 코웃음을 동반한 아이러니일 텐데, 따지고보면 일말의 초월의 욕망이 없지는 않았다.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감각의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 살면서 내가 차마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풍선처럼 부풀려지는 제스처의 과잉이다. 벤처 투기꾼들의 스캔들이 영화산업의 뼈대까지 뒤흔들지는 못했지만 <쉬리> 이후의 허장성세가 도대체 몇날을 더 갈지 의문이며 언제든지 환호성을 지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의 우호적 태도 역시 언제까지 버텨줄지 걱정이다. 어쨌거나 주말의 여가시간을 뭔가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적 삶의 구조 때문에, 그리고 프로스포츠와 경륜과 강원랜드와 마리화나가 아직 왕성하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매표 행렬을 이을 수밖에 없는 허약한 문화 인프라 덕분에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대체 인파이터를 찾아볼 수가 없다. 흠씬 두들겨맞더라도 갈 때까지 가보겠다는 쌍코피 정신의 고양된 양식. 없었다. 일종의 황지우식 ‘문학의 귀족주의’라는 오해를 살 만한 얘긴데, 어쨌거나 예술은 초월의 욕망을 먹고사는 게 아닌가. 이곳이 아닌 저곳, 낯선 체험, 실제 삶에서는 도무지 시도조차 할 수 없으나 언제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위험하게 사는 삶에 대한 동경, 깜박이조차 켤 겨를 없이 험로를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사유의 매혹, 그 정점에 서서 악마의 저주와 천사의 은총을 동시에 드리우는 가히 존경해 마지않을 치열한 작가정신.
그게 아니라면 뭣 하러 그 돈이며 시간들여서 대학 나오고 배우고 도제 거치고 사우나에 박카스로 스스로를 혹사하는가. 건성으로 입술이나 벙긋대는 립싱커들보다 한줌이라도 나은 게 뭐가 있는가. 예술 어쩌고저쩌고 그 언저리에서 밥 처먹고 사는 사람들, 키득거리는 거 아니면 불장난에 칼싸움뿐이니 이거 코박고 다 죽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신년벽두, 거꾸로 생각하니 이거 내 뺨부터 후려친 격인데, 바로크는 무슨 얼어죽을 바로크, 차라리 슈퍼마켓의 감정소비용품 코너에 가서 조금 철지난 거 사서 낭비한 꼴에 다름아니지 않은가. 생각하니 또한 두팔이 닿지 않는 등짝의 오지, 간지럽고 민망하다. 당장에라도 붉은 머리의 사제로부터 린치를 당할 듯, 솔직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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