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예술인 애니메이션은 보통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창조활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2002년 ‘신카이 마코토’라는 애니메이션 작가를 접하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발표한 <별의 목소리>는 비록 러닝타임 25분의 단편 애니메이션이지만 콘티, 디자인, 원화, 동화, 미술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을 컴퓨터 한 대(G4 Mac-400MHz)를 이용해 혼자 힘으로 완성한 실로 놀라운 작품이었다. 일본에서만 DVD가 6만장 이상 팔려나갔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16개국에도 출시가 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신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원작, 감독, 각본, 미술을 신카이 마코토가 맡고, 취약했던 캐릭터 디자인 및 작화의 보강을 위해 전문 애니메이터를 영입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덕분에 SF 장르로서 주로 영상 테크닉에 의존했던 <별의 목소리>에 비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스토리 중심의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영상미는 그대로 살리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팬들이 거는 기대 또한 컸다. 당초 발표보다 제작기간이 길어지며 많은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2004년 11월 일본에서 무사히 개봉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선보이게 되었다.
그러면 화제의 주인공인 신카이 마코토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살펴보자. 제 2차 세계대전 후 남북으로 분단된 가상의 일본. 미군이 점령한 남쪽에 살던 한 소녀와 두 소년은 유니온이 점령하고 있던 북쪽 홋카이도에 세워진 수수께끼의 거대한 탑까지 언젠가 날아가 보자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수년 후 두 소년은 소녀가 원인불명의 병에 걸려 계속 잠만 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잠자는 소녀를 깨우기 위해, 어린 시절이 그들이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년들은 힘을 모은다. 과연 그들은 소녀를 구할 수 있을까?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연상시키는 동화 같은 스토리이지만, 그 이면에는 부조리한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고뇌하는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DVD도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세계 만큼이나 깨끗하고 아름답다. 파워 맥 G5 컴퓨터로 작업한 영상은 상당한 화질을 보여준다. 푸른 하늘의 순도 높은 색상과 치밀한 계산에 의한 미술 설정은 그가 이 작품을 위해 쏟아 부은 열정을 모두 말해준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로 녹음된 음성의 경우 작품의 잔잔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효율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후반부에 나오는 전쟁 장면에서는 어느 정도 다이내믹한 음향을 맛볼 수 있다. 별다른 부록은 없지만 ‘신카이 마코토 인터뷰’는 볼만하다. <별의 목소리> 이후 새롭게 정한 목표에서부터 여러 스탭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느낀 점, 캐스팅이 이르는 다양한 내용을 직접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