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소녀의 성장 드라마 <앙 가르드>를 들고 날아온 아이세 폴랏 감독은 마주한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기분 좋은 미소와 친근한 매너를 지녔다. 전날까지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서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이엠알>을 보러 갈 거라는 이야기, 전주 음식이 맛있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품새가 소녀처럼 활기차다.
아이세 폴랏의 두 번째 장편 <앙 가르드>는 엄마에게 부정당하며 외롭게 자라온 소녀 알리스가 카톨릭 기숙사에서 난생 처음으로 친구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내면의 변화를 세심하게 따라잡은 영화다. “제목 앙 가르드는 펜싱 용어다. 이 소녀에겐 인생 자체가 펜싱과도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끼고, 그래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친구와의 우정이 남다른 것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이래 처음으로 자신을 좋아해주고 돌봐주는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소심한 성격으로 외톨이 신세였던 ‘안티 히어로’는 자신의 일부가 죽어나가는 것을 느끼고, 또 다른 상실을 체험하지만, 더 이상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고,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난다고도 전한다.
쿠르드족인 폴랏 감독은 터키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독일로 이주해 살아왔다. <미치고 싶을 때>를 비롯, 독일에서 터키계 영화인들의 활약상에 대해 묻자, 친절한 해석을 들려 준다. “실제로 터키계, 쿠르드계 영화인들이 독일 영화의 뉴웨이브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출신들이 대거 활약하고 있다. 이민 2세는 두 나라의 문화와 풍경, 부모 세대와의 차이를 접하기 때문에 들려줄 수 있는 얘기가 많다. 나도 처음 이민 왔을 때 언어 문제 때문에 시각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곤 했다. 그러니 영화로 흘러들어온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녀와 게이 가수의 ‘엄마 찾아 삼만리’를 따라간 데뷔작 <투어 어브로드>를 시작으로, 폴랏 감독은 길 위의 이야기를 줄곧 만들어 오고 있다. “로드무비를 좋아하는 건 인생 자체가 행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기 때문일 거다.” 지금 터키계 백수 건달이 복권에 당첨돼 금의환향하면서 겪는 일들을 시나리오로 쓰고 있는데, 먼저 이번 겨울에 무대에 올린 뒤에 내년께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