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를 컬렉션 하다보면 자신만의 손님 접대용 타이틀이 생기는 법이다. 아직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손님들이 방문할 경우 이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접대용 타이틀들의 최우선 임무가 된다. 하지만 계속 업데이트되는 화질과 사운드를 담은 DVD 출시로 이들 접대용 타이틀의 수명은 짧기만 하다.
타무라 시게루의 1993년 작 <은하의 물고기>는 DVD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99년 일본에서 초판이 출시됐지만 아직까지도 접대용 타이틀로서 손색이 없다. 이후 국내서도 <고래의 도약>과 함께 DVD 스틸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DVD 퀄리티에 대한 긍정적인 입소문이 퍼지면서 단박에 레퍼런스로 자리잡게 된 타이틀이기도 하다. 작품의 완성도에선 <고래의 도약>이 조금 앞서기는 하나 <은하의 물고기>는 아나모픽 화면을 지원하고 부록 또한 만족스러워 DVD적 측면에선 오히려 더 선호되기도 했다.
밤하늘 작은곰자리 주변에서 감지되는 사악한 기운을 퇴치하기 위하여 출동한 할아버지와 손자가 별똥별로 만든 창으로 괴물 물고기를 퇴치한다는 <은하의 물고기>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그도 그럴 것이 상영시간이 23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계가 모호한 공간들과 블랙홀-화이트홀과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엔딩장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5년 뒤 작품인 <고래의 도약>에 등장하는 노인의 추억일 수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그다지 단순한 것도 아니다.
애초부터 HD급 환경에서 제작된 <은하의 물고기>를 감독이 의도한 유리질의 영상과 사운드로 즐기기 위해선 DVD를 통한 감상이 필수적이다. 국내판 DVD의 부록은 일본판과 동일하고 단지 사양 면에서 DTS 트랙이 추가 수록되었다. 인터뷰 영상을 통해 감독과 제작자는 영화 속 옥에 티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러한 실수조차 감독이 만들어놓은 우주 속에서 있을 법한 현상으로 보여진다.
O.S.T는 잠시 눈을 감고서 CD를 듣는 기분으로 감상해도 좋을 정도로 괜찮다. ‘뮤직 트랙’ 부록에 담긴 5개의 트랙도 텍스트 내레이션과 함께 O.S.T를 감질맛 나게 들려준다. 화면 아래쪽에 보이는 한글자막조차 방해가 될 정도로 뛰어난 영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므로 한두 번의 시청으로 줄거리가 숙지된 뒤엔 자막을 끄고서 감상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