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는 인종청소가 두 번씩이나 발생한 저주받은 지역이다. 20세기 초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안 100만 학살에 이어 90년대 세르비아에 의해 20여만 명의 보스니아인이 학살당했던 것이다. <노 맨스 랜드>는 수년간에 걸쳐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을 2시간도 채 못 되는 시간과 한 뼘의 땅에 갇힌 3명의 병사를 통한 작은 전쟁으로 사태의 본질을 녹여 보여준다.
총든 자의 말이 진실이고 대화채널을 가진 자가 세계 경찰과의 대화에 유리하며 UN의 관료주의는 상황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며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며 체라의 등 밑에 파묻힌 지뢰의 폭발음을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그 소리를 기대하며 우리는 보스니아 내전이란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UN의 체념적 시각을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지뢰의 폭발음을 결코 들려주지 않는다. 타노비치 감독은 해결의 여지를 끝까지 남겨두며 누군가 그 지뢰를 해체해 주길 바란다.
내전은 잠재적 불씨를 남긴 채 끝났고 어느덧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갔지만 감독은 <2001년 9월 11일>에서 여인들을 통한 무언의 거리시위를 통하여 그날의 참상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국내판 DVD는 다행스럽게도 PAL방식의 스피드 업 현상으로 인한 93분의 러닝타임과 DD2.0채널을 가진 유럽방식이 아닌 97분 버전에 DD5.1채널을 담은 북미 버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록으로는 25분간에 걸친 전찬일 평론가의 강의 영상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