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넬리> O.S.T / 신나라뮤직 발매
카스트라토(castrato)란 거세한 남자 가수이다.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서양에서 그런 짓을 한 것은 보이 소프라노의 높은 음역을 유지하면서 성인가수의 원숙함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알려진 대로 당시 여성은 교회 의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프라노 음역은 소년들이 담당했는데, 카스트라토를 쓰면 계속해 소년들을 교체할 필요가 없어지고 음악적으로도 성숙해진다.
극단적인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라 할 카스트라토는 오늘날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카스트라토의 음역을 소유한 가수도 역시 만날 수 없다. 카스트라토는 테너의 중음에서 소프라노의 고음에 이르는 음역을 다 커버할 수 있었으므로 오페라 무대 같은 곳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주인공 노릇을 했다. 그래서 명성과 부를 얻기도 했는데, 그에 따라 거세를 결심하고 출세하려는 남자 가수가 여럿 생겨났다고 한다.
때는 중세의 폴리포니를 넘어선 바로크 음악이 한참 개화할 때이다. 바로크 음악은 교회음악이자 궁정음악이다. 영국, 프랑스 등의 궁정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분위기 음악이다. 그들을 위한 흥행이 바로크 시대 음악가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 흥행의 정점에서 카스트라토가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카를로 브로스키, 일명 파리넬리로 불린 카스트라토는 그중 두드러진 재능을 소유했다. 제라르 코르비오의 영화 <파리넬리>는 그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주로 카를로와 카를로의 형 리카르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거세당한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이 갈등을 유발하는 중심 테마이다. 여자관계는 형까지 포함하여 늘 셋이 맺는 관계가 된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당대 최고의 가수가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일부러 결함을 자초했으므로 파리넬리에게 결핍과 명성은 한짝이다. 사실 그러한 길에 대한 결정은 그의 것이라기보다는 가족의 것이었다. 그래서 명성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결핍의 몸만이 남는다.
오늘날에는 없는 카스트라토의 음역을 얻기 위해 두 가수의 음색이 컴퓨터로 합성되었다. 소프라노 에바 말라스-고들레브스카와 카운터 테너 데릭 리 라진의 음색이 그것이다.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루세의 지휘 아래 이 일을 한 팀은 프랑스의 ‘트래블링 오비디스’이다. 이들은 ‘IRCAM’, 즉 음향음악연구소에 속한 전산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10개월 동안 무려 3천개의 에디팅 포인트를 만진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과거에는 직접 사람의 생식기를 제거해서 얻을 소리를 이젠 ‘디지털 합성’을 통해 얻는다. 물론 자연적으로 생성된 소리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디지털 테크닉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 O.S.T가 최근 국내에서 재발매되었다. 음반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궁정음악으로 쓰인 가벼운 바로크음악 중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대에 헨델 못지않은 대가로 취급받았던 페르골레지의 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파리넬리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의 곡도 실려 있다. 또 헨델의 유명한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도 다시 한번 듣게 된다. 재미난 것은, 당시의 카스트라토들이 즐겨 했던 ‘즉흥적 변주’가 이 노래에서 시도되고 있는 점. 당시는 오늘날처럼 오페라 가수들이 악보에 나와 있는 대로 노래를 하지 않았다. 명가수라면 이른바 ‘다 카포 아리아’라 하여 앙코르곡으로 부를 때에는 전과 다르게 불러야만 했던 것이다. 특히 파리넬리는 다 카포 아리아에서 불세출의 재능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헨델의 노래에서 그러한 방식의 목소리 변주가 약간은 어설프나마 시도되고 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