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 감독의 신작 <식일>(式日)이 지난 12월7일 개봉돼 일본의 젊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
자신의 일과 일상생활에 지친 영화감독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기차 선로에 드러누워 있는 소녀와 만난다. 그녀의 별난 모습과 스스로 ‘의식’이라고 부르며 벌이는 불가사의한 행동에 흥미를 가진 그는 매일 그녀와 만나고 결국 함께 살게 된다. 매일매일 “내일은 나의 생일”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과거엔 무엇이 있었나?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그는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된다.
안노 감독의 두 번째 실사 영화인 <식일>은 할리우드 액션배우 스티븐 시 의 딸인 후지타니 아야코의 소설 <토피몽>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에서 소녀 역으로 출연, 첫 주연에 도전한 21살의 그녀는 CF, 영화, TV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잡지에 수필도 기고하고 있다.
원작은 후지타니가 17살 때부터 쓰기 시작해 19살에 마쳤고, 시나리오 작업은 그녀, 감독, 프로듀서가 함께 검토해 감독이 마무리했다. 안노 감독의 분신으로 생각되는 극중 영화감독 역에 <러브 레터>의 이와이 순지 감독이 기용된 것도 이 영화의 볼거리. 그는 소녀의 별난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는 감독 역을 자연스럽게 연기했을 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감독이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으로 설정된 영상도 실제로 직접 찍었다.
감독인 안노 히데야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한 뒤 작화감독을 경험했고, TV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 히트작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어냈다. 나중에 극장용 장편으로 제작되기도 한 이 작품에서 그는 기존 애니메이션의 표현을 초월한 다이내믹한 액션과 캐릭터를 묘사했고, 주인공의 내면을 깊고 날카롭게 추궁하는 영상세계를 전개하며 많은 젊은이들에게서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 ‘눈앞에 있는 것을 그저 아름답게 찍고 싶다’고 생각했던 안노 감독은 시네마스코프 사이즈의 화면을 선택하여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집들과 거리, 철로, 공장 등을 깊이 생각한 구도로 촬영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녀가 사는 빌딩은 현실과 허구가 섞이는 기묘한 공간이다. 영화는 그 공간 안에서 소녀와 감독의 일상을 따라가지만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후지타니 아야코가 그린 그림에 디지털적인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는 내레이션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내기도 하는 등 안노 감독다운 복잡한 수법을 다양하게 쓰고 있다.
<식일>은 ‘의식을 하는 날’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의식을 되풀이하며 ‘새로운 날’로 뛰어들려 하지 않는 소녀와 그녀를 지켜보는 감독이 함께 내일을 찾는 이야기이다.
도쿄=사토 유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