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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고양이? 아니, 새끼 호랑이! <수취인 불명>의 양동근

빨간 러닝셔츠에 힙합 반바지 손가락을 가릴 만큼 크고 굵은 반지 꼬이고 또 꼬인 쿨한 레게머리 나른하게 걸어오는 술취한 고양이 헤이 맨, 우리 인사나 하지 나는 힙합 구리구리 양동근이지.

힙합맨 양동근. 그러나 정작 우리가 그와 처음 마주치는 공간은 스프링클러로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브루클린의 뒷골목이 아니다. 미군이 드리운 그늘이 허파 속까지 곰팡이를 슬게 만드는 기지촌의 언덕, 그 빨간 버스 앞이다. 흑인병사와 양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혼혈아. 대답없는 편지를 날려보내는 어머니를 향해 슬픈 주먹질을 해대던 <수취인 불명>의 양동근은, 아니 창국은 어미의 젓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으로 자신과 대지를 연결한 탯줄을 자르고, 논바닥에 고꾸라져 처박히는 것으로 그를 낳은 저주받은 땅으로 귀환한다.

“저, 진짜로, 심각하게, 제 조상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많았어요.” 9시간 걸려 꼬았다는 레게머리로 나타난 양동근은 ‘혹시 내 조상이 흑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했다. “제가 제주 ‘양’씨거든요. 제주도는 외국사람들 왕래도 많았으니까. 엉… 그니까, 의심해 볼 만해요. 피부도 까많고 머리도 지독하게 곱슬이고 엉덩이도 크고 어깨도 넓고, 우리 식구 다 그래요….” <수취인 불명>의 애초 시나리오에 백인 혼혈아였던 창국이 흑인으로 둔갑한 것도 100% 양동근 때문이었다. “8·15 특집극에서 짧은 머리에 얼굴을 검게 칠한 채 출연했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나봐요”

서울극장 앞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난 김기덕 감독은 드라마 화면을 직접 캠코더로 찍어와 “이런 느낌, 또 이런 표정들이 좋다”며 그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창국과 양동근을 연결시켜 보여주었다. “감독님요? 첫인상이 굉장히 차분한 여성의 느낌이었어요.” 출연을 약속한 뒤 ‘평범하지 않다’고 문난 김기덕 감독의 전작을 보았다. “한편 한편 보다보니 그분의 스타일을 알겠더라고요. 뭔가 말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필’을 느꼈어요. 디테일한 분 같아요. 이번 영화 찍을 때도 제가 놓치기 쉬운 감정선을 하나 하나 정리해주셨거든요.”

79년생, 아직 22살밖에 안 된 그이지만 14년의 연기경력은 마흔 넘은 선배들 못지않다. 87년 <탑리>라는 드라마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처음 비춘 이후 양동근에 대한 기억은 <서울뚝배기>에게 “아자씨, 지가여, 왜 그랬냐면여”라며 주현의 말투부터 행동까지 똑같이 따라 하던 똘똘하고 귀여운 ‘아역탤런트’. “학교 가는 것보다 연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어릴 때는 어른들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죠. 그러다보니 어른스럽다, 애늙은이다, 이런 말 많이 들었고 또래 친구들이 별로 없어요. 감정기복도 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요. 외로울 때는 술이 친구예요. 아이, 그렇다고 아주 친구가 없는 건 아니고요. 막 여러명하고 어울려 다니지는 않아요. 사실 장례식 때 울어줄 친구 3명만 있으면 되 는거 아닌가요? 그 정도는 확보해놓은 것 같은데….”

지금 양동근은 또 한통의 편지를 쓰고 있다. 여름 문턱에 배우가 아닌 무대의 래퍼로 만나기 위해서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열중하고 있는 앨범 작업에 어떤 답장이 날아올지 아직 모르지만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 결과는 별로 상관없다”고 ‘애늙은이’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흐느적 흐느적 고저없이 단조로운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그의 이야기가 랩이 될 때, 아직 고양이같이 귀여운 새끼 호랑이의 발톱을 삿대질하듯 질러댈 때 아마도 우리는 애정어린 답장을 쓰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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