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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도 분배의 정의가
2001-05-24

사랑하는 일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라면을 먹고 달리는 임춘애에게 온 나라가 감동한다. 날숨이 보얀 입김이 되어버리는 추운 다락방에서 오선지에 악상을 옮기는 슈베르트를 본 적은 없어도, 이야기만으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시대가 열정적으로 흠모하는 영화의 현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날을 통째로 바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같은 희생이 언제까지나 미담으로 남아 있지는 못한다. 영화산업의 파이가 그러기엔 너무 커졌다. 분배의 문제가 최근 영화계 스탭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돈은 영화를 향해 밀려 들어오고, <쉬리>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친구>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무찌른’ 한국영화들의 명맥이 끊이지 않는데 우리들의 처우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들은 말한다. 한국영화 80년사에서 처음 들리는 목소리다. 경력 5년에 연봉 150만원, 충무로 ‘조수’들의 생존현실은 IMF를 거쳐온 많은 사람들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액수다.

<씨네21>이 스탭의, 좀더 정확히 말해서 이 조수들의 생존권에 관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발언대에 오른 김영철 촬영감독이나 비둘기 둥지의 대표는 물론, 한국영화제작의 중심에 서 있는 2세대, 3세대 제작자와 프로듀서들이 기꺼이 초청에 응했다. 선 자리에 따라 견해와 그 표출방식이 일치되지는 않았고, 의견교환은 난상토론의 형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한국영화계가 씨름해야 할 의제들이 차곡차곡 윤곽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와 프랑스, 일본의 스탭처우나 고용계약방식을 <씨네21>의 현지통신원들이 인터뷰 등을 통해 조사해 보냈다. 우리의 문제해결에 참고자료가 되길 바란다.

개발을 위해 분배의 과제를 유보했던 한국경제의 경험이 되풀이되는 듯한 영화계의 분배 논의는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자원봉사자’급의 희생 위에 세우기에 영화의 집은 너무 커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씨네21> 토론에서도 나타났듯, 제작과 스탭 양쪽 모두 이 문제를 “어렵지만” 회피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간헐적으로 제기돼온 제작시스템의 합리화와 아직도 몇몇 부문에 남아 있는 ‘수업시대’의 희생서약 철거도 스탭들에게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이루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