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친 명사들은 어찌보면 자신을 적절하게 홍보할 줄 아는 꾀에 능한 이류 천재들이라고 볼 수 있다. 진짜 천재들은 자기 존재를 알리지 않고 숨어 지내다 죽는다. 많은 천재들에게서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자폐 증세가 나타나는 건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집중된 정열` 때문일 것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새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았다. 온갖 걸 배달시켜가며 수십 년째 아파트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사는 은둔 소설가 윌리엄 포레스터(숀 코너리)나 문학적 재능을 안으로 삭이는 흑인 소년 자말 월레스(롭 브라운)는 모두 대인관계를 저어하는 외로운 영혼들이다.
범속한 동료나 또래들 사이에서 섬이 되어버린 두 사람이 자석이 끌어당기듯 어느날 맞닥뜨렸을 때, 더듬거리며 서로를 탐색하던 둘은 상대방이 자기와 비슷한 부류임을 알아본다.
소설 한 편으로 문학사에 별이 된 포레스터와 카프카, 사드를 읽으며 문학적 성공을 꿈꾸는 자말은 처음엔 선생과 제자 처지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좋은 글`을 찬미하는 한 마음으로 믿음을 쌓아간다.
<파인딩…>은 비범한 소년 자말이나 고독한 애어른인 포레스터 모두에게 일종의 성장영화다. 삶이 한 치 앞을 내다볼 길 없는 미로라면, 둘은 서로에게 그 미궁을 빠져나가는 길잡이 구실을 하는 한 뭉치 실처럼 엉켜든다. 흑인 아이와 백인 어른이 인종과 나이와 편견과 상처를 넘어 참된 친구가 되었을 때, 세속의 걸림돌들은 천재들이 뿜어내는 광휘 앞에서 부서진다. 한 인간이 세상에 와 알고 가야할 올갱이, 말하자면 참된 우정이라든가 사랑에 대해 두 남자가 보여주는 진지한 접속은 포레스터가 자말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 시처럼 남았다.
"사랑하는 자말, 한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거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비슷한 틀거리를 지녔던 전작 <굿 윌 헌팅>에서보다 훨씬 부드럽고 무덤덤한 연출로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대한 풍경 하나를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삶에 대한 믿음이 익어가는 계절`을 풍모로 스크린에 꽉 채워넣은 숀 코너리나 물이 오른 싱싱한 청년을 표정으로 보여준 롭 브라운 두 명 연기자는 그 풍경화에 우뚝 선 나무들이다.
정재숙 기자j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