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시뤼는 1966년에 서른살의 나이로 죽었다.
도미니크는 서른살에 죽었다. 편집 보조를 하던 피에르 루이도 서른살에 죽었다. 78년 3월28일 미셸이 사라졌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나는 81년 그가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로맹 구필(Romain Goupil·50) 감독은 ‘밀리탕트’였다. 그는 1968년 5월
시위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전투적인 사회주의 조직인 고등학생전국연맹의 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선동가이기 전 영화 찍기를 사랑한
영화제작광이었다. 각종 시위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참여했지만 틈틈이 자신의 친구이자 혁명적 동지인 미셸을 클로즈업한 영화를 찍기도 했다.
휴가를 가도 카메라는 있었고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현장에도 카메라는 동행했다.
그가 카메라를 든 건 64년, 그의 나이 14살
때였다. 같은 동네 친구였던 코요테, 밥티스트와 놀다가 생각해낸 게 영화였다. 모자라는 건 돈뿐이었고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학만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하고자 했지만 할 수 있는 건 공산당 기관지 <위마니테>를 파는 일뿐이었다. 15살 때 독재자
프랑코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찍기 위해 스페인에 가기도 했다. 스페인 촬영을 끝냈더니 필름이 몇자 남았다. 그는 화장지를 사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장면을 찍었고 그것을 배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화장지를 던지고 받는 사람들의 컷과 연결했다. 그 짤막한 영화는 예상치 않은 결과를 얻었다.
전국 규모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자 텔레비전에서 그것을 방영하게 된 것이다. 관례상 그를 추천해줄 ‘대부’격인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고다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턱대고 편지를 썼다. ‘당신이 해줘야만 나의 필름이 방송됩니다.’ 고다르에게 편지가 왔다. 며칠
몇시냐. 그날 방송사에는 고다르가 와 있었다. 우연하게도 방송사에는 스페인 대사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편집된 필름 자체는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어린 감독은 정치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고다르는 맞장구를 쳤고 소개 자리는 스페인 성토의 자리가 되었다. 결국 이 대화내용은
방송을 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우화지만 “어머니는 무척 실망했다”. 고다르와의 인연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만든 다큐멘터리
<독일 영년>(Allemagne Annee 90 Neuf Zero)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사랑도 하지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그는 전국조직의 의장을 지냈던 미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찍었던 필름을 꺼냈다. 미셸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 들어 있는 기록필름을
찾았다. 그리고 미셸을, 68년 5월을 회상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미셸이 자신의 심정을 적은 일기에는 한 소녀를 사랑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마음이 나와 있다. 짝사랑한 소녀는 미셸을 회상한다. “나는 그를 짝사랑했지만 그는 그런 것에 관심없는 듯했고, 그리고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서른살의 죽음>(Mourir a(`를 위에 찍어주세요) Trente Ans)은
애도의 정으로 만든 영화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배급은 어떻게 할까라는 고려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그 영화 만들기를
막지 못했을 것만 같은 절절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맨 처음 미셸의 어머니와 형님에게 보여주었다. ‘당신들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82년 칸에 출품된 영화는 황금촬영상(Prix de la camera d’or)을 받았다. 20년이 지난
2001년 <서른살의 죽음>은 전주영화제 포스트68섹션에 초대되었다. 상영 초반 필름이 찢어졌고 상영이 취소되었다. 밤 12시에
마련된 무료영화 상영회에는 찢어진 필름 대신 비디오를 틀어야 했다.
“감독은 절대로 메시지를 전달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그 메시지를 받아들여서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영화는 끔찍하다.”
<인터내셔널가>가 내내 울려퍼지는 집회의 절정에서도 영화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상을 풍긴다. 그는 이후 <L…을 위한
편지>(Lettre pour L…, 1994), 칸에 출품하기도 한 <죽음에 죽음>(A Mort la Mort, 1999)와
TV를 위한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었다. 그는 <서른살의 죽음>이 상영된 뒤 관객과의 대화 도중에 화장실이 급하다면서 뛰쳐나갔다.
그가 8∼9월에 촬영을 시작하는 영화는 <서른살의 죽음>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다. 이제 50대가 된 밥티스트와 코요테가 나오고 장난끼와
사회에 대한 시각을 다시금 어울리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아마 어느 감독이 전주영화제에 왔다가 소변이 보고 싶어 극장을 뛰쳐나가는 장면이
나올 것이다.”
글 구둘래| 객원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