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해외뉴스
미국영화, 지중해 대공습
2001-05-11

프랑스 파리는 아직 겨울의 껍데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두터운 외투 속에 푹 파묻혀 오가는 시민들과 잦은 비로 흙탕물이 돼 넘실대는 세느강 풍경이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비행기로 1시간반을 내려간 지중해 연안의 칸은 딴 세상이다. 눈부신 하늘, 따뜻한 햇볕 아래 반라의 남녀들이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느라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제54회 칸영화제가 이런 자연의 축복 속에 9일 막을 올렸다.

이날 개막작이자 경쟁작으로 상영된 <물랭루즈>는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바즈 루어만 감독은 파리 몽마르트에 실존하는 클럽 `물랭루즈'의 1세기전으로 돌아가 20세기 팝문화의 결정판을 보여주었다해도 지나치지 않을 흥겨운 뮤지컬 잔치를 벌였다. 장난기 가득한 만화적 상상력으로 넘쳐흐르다가도 웅장한 오페라의 감흥을 안겨주는 루어만의 솜씨는 뮤직비디오의 감각으로 고풍스런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성공했던 이력을 더욱 빛나게 했다. 세계적 스타 니콜 키드먼은 고혹적인 가수 샤틴으로, 이완 맥그리거는 사랑에 둔감했던 시인으로 분해 열정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을 그려갔다. 파리의 환락가를 누볐던 불운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이들 사이를 이어준다.

개막작의 제작사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20세기 폭스'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조직위는 “지난해에 비해 29%가 늘어난 1798편의 장단편 영화를 보고 이번 영화제를 꾸렸다”며 올해의 가장 큰 특징으로 “미국의 거대한 귀환”이란 표현을 썼다. 23편의 경쟁작 가운데 5편이 `미국산'이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슈렉>까지 2편이 메이저 영화사의 작품이고, 조엘 코언의 <거기에 없는 남자>,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배우이자 감독인 숀 펜의 <서약> 등 독립영화 3편을 경쟁 부문에 올렸다. 특히 칸은 올해 찰리 채플린, 하워드 혹스 등 미국의 고전 코미디영화에 대한 회고전까지 마련해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일본영화의 약진을 가장 큰 특징으로 뽑았다. <르 몽드>는 칸영화제 특집호에서 “경쟁·비경쟁을 통틀어 무려 9명의 일본감독이 초청을 받았다”며 “경쟁 부문에 작품을 내놓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60년대 일본 누벨바그의 기수였는데, 그와 더불어 일본의 누벨누벨바그가 밀려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유레카>에 이어 올해의 신작 <사막의 달>을 잇따라 경쟁작으로 올려놓은 아오야먀 신지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홍콩은 경쟁작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와호장룡> <화양연화> 등 중국계 영화의 성공에 고무받은 듯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자축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홍콩 정부는 `칸에서의 홍콩'이란 표어를 내걸고 장만옥, 주윤발, 양자경 등 홍콩 스타들을 모조리 불러내 이번 주말에 대형 파티를 여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한편 심사위원단은 심사의 최대 기준을 `감성'으로 삼은 듯 했다. 노르웨이의 감독이자 배우인 리브 울만 심사위원장은 “여성으로서 21세기의 첫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데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며 “영화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지적인 측면을 너무 강하게 보는 데 영화는 이해하기보다 뭔가를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심사위원인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 배우 샹드린 키베를랭 등도 이구동성으로 “영화는 감정을 경험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칸/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