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9호에서 <씨네21>은 지나간 영화들에게 늦은 편지를 부쳤다. 그렇게 어제의 서랍을 뒤져, 정리를 하고 나니 창간호부터 시작한 오늘의 그림을 그릴 시간이 됐다. '한국영화산업 파워50'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화제도 많이 불러일으켰고, 영화인을 서열을 매겨 줄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런 평가와 관계없이 가장 재미있는 건 영화인과 관게자, 영화기자들로 구성된 추천인들의 목소리를 청취해 가감없이 작성하는 이 충무로 조감도가 해를 거듭하며 한국영화산업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충무로 토착자본들이 대부분 사라진 가운데 극장과 배급을 장악한 곽정환씨나 임권택 감독과 참으로 예술적인 콤비를 이뤄 한국영화의 진정한 세계화에 기여한 명제작자 이태원도 하나의 영화적 상징이라 하겠다. 이 여론조사의 대상이 되는 '영화산업'이 자본과 예술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는 기초상식을 강조하느 듯한 상징말이다. 그래서 산업적 지략과 영화감각을 두루 갖춘 강우석씨가 연속 1위를 차지해온 것일 테고, 임권택 감독을 위시한 장선우, 이창동, 홍상수 감독 들이 '업계의 실력자'로 뽑힐 수 있는 것일게다. 시장과 사유와 공적 영역으로서의 예술, 그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한국영화계의 영화인식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또 하나, 충무로 자본은 해마다 변하는데 영화정책을 창조하다시피해온 인사들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문성근씨나 정지영 감독 같은 배우와 감독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쯤, 한국영화는 영화정책건설중이란 푯말을 떼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배우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말 그대로 연기파 배우들이 순위진입도 반가운 일. 영화가 배우를 만들고, 배우는 영화를 살리기 때문이다. 희망만을 골라보는, 편광판같은 나의 각막을 탓해야겠다. 이런 '인자'들의 화확반응이 결국 할리우드의 상대적 영향력 감퇴를 불러온 것일게다.
그러나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우울한 대종상 풍경이 다시 들어온다. 아카데미가 할리우들를, 칸이 이른바 작가영화를 지원하듯 한국영화를 부양하는 대종상은 어제쯤 볼 수 있을까. 한국영화의 파워를 증강시키는 '권위있는 한국의 영화상'은 기대한다면 어리석을 일일까. 창간특집 '한국영화산업파워50인'에 앞서 대종상 긴급진단을 타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