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둥지를 비롯, 스탭들의 노동조건 개선 움직임 활발
“전 스탭 계약제를 실시하라!” “표준 계약제 실시하라!” 스탭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인터넷에 ‘비둘기 둥지’(http://cafe.daum.net/vidulgi/)라는 토론방을 개설한 스탭들은 지난 4월25일 대종상 시상식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며 공개적인 활동에 나섰다. 이날 피켓을 들고 나온 스탭들은 20여명.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스탭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시위라는 사실 자체가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이들은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식장 밖에서 ‘제작자의 웃음 뒤에 가려진 영화인들의 한숨’, ‘불평등한 계약과 저임금에 착취당하는 영화인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현재 전통적인 도제시스템과 불공정한 계약관행은 조수생활을 하는 스탭들을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생활로 몰아넣고 있다. 1년 연봉 200만원 미만의 스탭들이 허다하다. ‘비둘기 둥지’ 운영자인 시나리오 작가 김광호씨는 당장 목표를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라고 말한다. 이를 실현시킬 방안이 바로 표준계약서다. 현재 통용되는 계약서는 기사급 아래 스탭들에겐 노비문서 같은 것이어서 초과근무를 하든, 매우 위험한 일을 하든 차이가 없다. 제작기간이 얼마든 받는 돈이 똑같고 무엇보다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금액이라는 게 문제다. 약자인데다 단결할 구심점이 없어 형편없는 노동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소수지만 스탭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영화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젊은 제작자들도 “한국영화의 산업화를 부르짖는다면 스탭들에게도 그에 걸맞은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경험을 해본 영화인이라면 스탭들의 이런 요구가 정당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기사급 스탭과 기사 밑에서 일하는 스탭들의 이해관계가 다른데다 제작비 상승을 선뜻 받아들일 제작사도 별로 없기 때문. 김광호씨는 “장기적으로 보면 스탭노조가 결성되는 날도 오겠지만 지금으로선 스탭들의 처지를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활동을 준비하는 이들을 보면 지금이 21세기라는 게 실감이 안 된다. 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노동조건을 해결해달라는 70년대식 구호가 돈이 넘치는 2001년 충무로의 또다른 풍경이다.
남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