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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시 본다
2001-04-25

다시 시작이다. 창간 6주년을 맞으며 <씨네21>은 우리의 발밑에 새로 출발선을 긋는다. 돌아보면 지난 길은 <씨네21>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우리들의 예술'로 채택한 시대가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들을 우리는 온전히 읽은 것일까.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것일까. 혹시 다가올 시대의 전령을 문전박대하여 거리로 내쫓은 우를 범한 적은 없을까. 출발선에서 우리는 그런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본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적 유희에 휘말려, 아니며 일시적 환호에 휩쓸려, 감각의 새로움에 미혹되어 안 그래도 좋을 영화에 과도한 찬사를 보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발끈을 다시 매며, 우리는 그 답을 찾기로 했다. 298권의 <씨네21>을 거슬러 창간호에 가닿기까지, 예상은 했지만,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영화의 두 주체, 만드는 이와 보는 이의 중간지대에서 '오늘'의 대화를 주선하는 것이 우리의 직무라는 데 생각이 미치니 금세 반성이 찾아온다. <씨네21>은 이 대화를 통해 영화를 만들고 보는 즐거움을 확대시키고 싶었다. 발견의 즐거움, 이해의 즐거움. 영화 속에 스며 있는 시대와 역사와 개성과 인간을 함께 읽으며, 기쁨과 희망뿐 아니라 고통과 분노까지 함께 나누는 즐거움. 그리고 영화의 문장이 내뿜는 매력을 즐기는 기쁨. 당장의 쾌락에 즉각 기여하는 대신 사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 깊게 하는 영화를 공유하는 지대를 넓혀가는 것도 그 곳에 당연히 들어 있었다. 노고가 과중했다고 과시할 계제가 아니지 않은가.

창간연속 특집의 첫회를 그래서 우리으 자술에 바쳤다. '씨네21이 틀렸다!'

<씨네21>의 기자들은 토론을 통해 9편의 영화들을 골랐다. 여전히 많은 오해를 사고 있는 김기독 감독의 위악을 걷어내니 "시궁창 속"의 사람들을 향한 <파란대문>의 연민어린 시선이 드러났다. 정지영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블랙잭>을 지지했으나, 그 소리가 너무 작았다는 후회가 찾아들었고, <미션 투 마스>의 우주가 느리게 느리게 다시 열렸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을 미국의 영화창고에서 꺼내올 수는 없겠지만, <플란다스의 개>에 관객의 환호를 다시 불러올 수는 없겠지만, 이같은 재진술을 <씨네21>은 우리의 영화보기에 실릴 정성에 대한 담보르 제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