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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2001-04-19

미친 더위에 때이르게 벚꽃이 피고, 황사 바람에 비까지 찾아들어 또 꽃들이 진다. 에이, 버얼써 졌지요, 출장을 다녀온 동료는 남녁 꽃소식을 묻자 타박을 한다(진짜 타박은 아니고,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여의도를 지나야 하는데, 늦은 밤 꽃가지 아래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쌍쌍의 남녀가 끝없이 줄을 잇는다. 그래, 봄밤나들이구나.

<씨네21>도 계절을 못이겨 나들이를 준비했다.

길은 두 갈래다. 창간 6주년을 앞두고 여는 씨네21영화제가 그 하나. 지난 해 조선희 창간편집장이 시작한 이 행사의 출발배경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국제영화제들이 생겨났고, <친구>처럼 부산에서 출발해 전국을, 영호남의 경계까지 넘어서 휩쓰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문화의 서울편중현상은 가시지 않았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씨네21>의 독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영화를 기사로만 읽는다는 얘기다. 독자시사회 같은 소소한 즐거움도 모두 서울분들 차지다. 편지함에는 그런 소외를 섭섭해하는 목소리들이 거의 언제나 담겨 있다. 그것이 올해에도 작은 만남을 준비하는 이유다. 서울부터 광주, 부산까지 여섯 도시를 돈다. 주문들이 무성하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이곳 극장에서 안 틀었어요. 꼭 구해주세요. 비디오가 나왔다지만, 어디 필름으로 보는 것만 한가요, <수쥬>도요. 우리도 <구멍>을 필름으로 보고 싶은데요. 새로운 영화들 사이에 '주문작'들을 챙겨 넣는다.

그 옆길은 좀 엉뚱해 보일지 모른다. 영화 밖으로 향하는 길들을 내고,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께 나들이를 청했다. '영화를 벗어나라'는 저희들의 명령형 제목에 부디 노여워마시기를. 8분의 평론가가 8권의 책을 추천해주셨는데, 이 책들은 이른바 영화책들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들의 정신의 지도를 정신분석적으로, 또는 문화정치적으로 작성하거나,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돼온 폭력과 억압을 해부해보이기도 한다. 아니다. 영화밖을 비추는 책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는 것이 애초 영화가 세계나 인간과 절연된 별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봄날, 우리들은 어디선가 반드시 만날 것 같다. 씨네영화제가 열리는 어느 작은 극장에서건, 책들이 숲을 이룬 어느 공간에서건, 이런 인사가 필요할 듯 싶다. 그렇지요? 영화의 친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