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만의 부활
영국영화계가 때아닌 ‘프리시네마’의 재조명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불을 댕긴 것은 최근 비평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폴 폴리코스키의 <라스트 리조트>가 프리시네마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적자라는 비평계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불법이민자들의 생활을 16mm로 찍어 35mm 블로업을 거친 초저예산의 이 영화는 린제이 앤더슨의 기념비적인 12분짜리 단편 <오 꿈의 나라>에 노골적인 오마주를 바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중심적인 이미지도 많은 부분 차용하고 있다.
1953년 만들어진 <오 꿈의 나라>는 영국영화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프리시네마의 효시가 되었던 작품이다. <오 꿈의 나라>는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나서야 온전히 평가되기 시작했는데, 1956년 국립영화극장(NFT)에서 50분짜리 중편 <투게더>, 다큐멘터리인 와 함께 상영된 뒤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로렌자 마제티와 데이비드 혼이 공동감독을 맡은 <투게더>는 이스트 런던에 사는 벙어리 형제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따라간 작품이고, 카렐 라이츠와 토니 리처드슨이 함께 연출한 는 클럽에 드나드는 틴에이저들의 삶을 관찰한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의 면면을 볼 때 이후 프리시네마의 기수가 되는 세대의 등장을 알린 기념비적인 상영회였던 것이다.
로케이션 촬영, 저예산, 아마추어 배우 기용 등 다큐멘터리의 특징을 적극 차용한 프리시네마는 이후 린제이 앤더슨의 <만약에…>, 토니 리처드슨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으로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프랑스의 누벨바그에 비견할 만한 전성기를 맞게 되고 영국영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리시네마는 오래 가지 못한다. 린제이 앤더슨을 비롯한 몇몇의 작가에 의해서만 주도되었던 프리시네마는 그 대중적 파급력이 영화가 가진 힘과는 별개로 약했던 것이다. 일종의 혁신적인 작가군에 의해 단기간 일어났던 ‘영화적 에너지’에 가까웠지 누벨바그와 같은 ‘운동’이 되기엔 국제적 파급력이나 뿌리가 약했던 것이다.
지난 3월22일 NFT에서는 <오 꿈의 나라> <투게더> 등 세편의 작품이 48년 만에 다시 소개되었다. 프리시네마를 재조명하는 스페셜이벤트도 열렸다. 이미 프리시네마를 잊어버린 많은 영국 관객에게 48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탄생한 <오 꿈의 나라>와 <라스트 리조트>를 비교해볼 수 있는 값진 기회였을 것이다.
런던=최인규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