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이하 <0번째 밤>)은 근래 주목받은 <옵세션> <백룸>과 같은 여타 호러영화들과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건 이 영화가 의외로 웃기다는 것이다. 이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전작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관련하여 <0번째 밤>을 이야기할 때 감독 잭 크레거가 어릴 적 원작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만큼 중요한 것은, 이 감독의 데뷔작이 코미디영화였다는 점이다. 코미디 극단의 멤버이기도 했던 잭 크레거는, 2009년 같은 극단 동료 트레버 무어와 공동 연출한 <미스 마치>로 연출 데뷔를 했다. B급 저질 코미디에 가까운 이 영화를 수작이라 평하긴 어렵겠지만, 분명 잭 크레거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미스 마치>가 은근히 풍기는 공포의 뉘앙스 때문이다. 잭 크레거가 직접 연기한 영화의 주인공 유진은 성관계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인데, 그는 결국 거사를 치르기 직전 만취한 상태에서 낙상해 코마에 빠진다. 또 한명의 주인공인 터커는 성관계 중 연인이 발작 증세를 보이며 자신의 신체 부위를 깨물자 포크로 상대의 얼굴을 마구 찌르기도 한다. 두 장면 모두 호러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신체 훼손/마비를 연상시키며, 코미디와 호러의 작동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잭 크레거를 미국 호러영화의 떠오르는 샛별로 각인시킨 <바바리안>과 <웨폰>을 지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리부트 프로젝트의 첫 작품을 맡게 된 그의 전략은 다시 코미디다. 영화는 영민하고 신체 능력이 뛰어난 히어로적인 인물이 아닌, 허술하고 상황 파악이 느린 평범한 배달원 브라이언에게 세상의 운명을 맡긴다.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이 인물에게 인류의 희망이 걸려 있었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가 그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농담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가 우선순위를 모른다는 것이다.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한 연인에게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하는지, 이때 다음 동선으로 어디를 택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그에게 가장 높은 등급의 배달물이 주어졌다는 아이러니가 극 전체를 감싼다. 솔직히 말해 이 인물이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초반부 눈길 운전 중 누가 봐도 정상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좀비를 조수석에 태우고 친절히 안전벨트까지 채워줬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포함한 눈길 시퀀스는 슬로 좀비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는 느슨한 슬랩스틱코미디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0번째 밤> 속 코미디의 두 번째 특징은 코미디의 클래식인 ‘반복’이다. 이 좀비영화는 다양한 형태의 좀비로 물량 공세를 하는 대신, 한 좀비를 반복해서 등장시키는 것을 선택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좀비는 계속해서 진화하며 재등장한다. 그래서 을 보며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이 좀비의 사망 조건이다. 이 영화는 좀비 장르의 널리 알려진 첫 번째 규칙 “머리를 노려라”를 가뿐히 무시한다. 머리가 파괴되어도 그 경계에서 촉수가 기어 나와 다른 사체와 결합하여 움직임을 지속한다. 더욱 지독한 건 이 좀비가 주인공의 몸에 GPS를 달아놓고 있는 것처럼 오직 브라이언만 쫓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끈질김이 후반부에 큰 웃음을 선사한다. 마치 <라이터를 켜라>의 허봉구(김승우)처럼 좀비가 끝까지 추격을 포기하지 않자, 브라이언이 이제 정말 질렸다는 듯 “내가 잘못했다. 그만 좀 쫓아와라”라고 외친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진지한 호러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선 절대 나오지 않을 대사다.
이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또 다른 무언가는 자물쇠다. 잠긴 자물쇠는 분명 게임적인 장치다. 플레이어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다음 장소로 넘어가게 해주는 게임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게임 제작자는 의도적으로 중요 거점마다 자물쇠를 배치해 플레이어의 문제 해결 능력을 시험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잭 크레거의 게임 팬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게임을 영화로 구현하는 감독들의 대부분은 인물의 시점이나 장비/소모품 등 아이템 수집에 관한 시각적 연출은 중시하면서도 자물쇠와 같은 게임 플레이의 재미를 구성하는 요소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는 경우가 많기에 그렇다. 영화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서, 혹은 원작 게임이 갖고 있는 수많은 매력 포인트들을 제한된 러닝타임 내에 최대한 많이 담아내야 한다는 관점에서 자물쇠는 분명 걸림돌이다. 반면 잭 크레거는 이로 인한 덜컥거림과 우선순위를 고민하는 탐색의 시간들이 오히려 본질이라 생각하는 듯 이를 부각한다. 사실 자물쇠 또한 클래식이다. 요즘 세상에 어딘가를 잠글 때 실제로 ‘자물쇠’를 사용하는 곳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극 중 반복되는 자물쇠에 지친 브라이언의 외마디 비명에 또 한번 웃게 되는 것은, 이 많은 자.물.쇠.를 보고도 오직 어리석은 브라이언만이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이 현실인지, 픽션인지, 게임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뿌리였던 게임과 코미디의 결합으로
그런데 대체 이 세상은 무슨 이유로 (다시 한번) 이렇게 된 것인가. 리부트된 레지던트 이블의 세계의 사연은 얼마나 특별할 것인가. 여기서 잭 크레거는 다시 한번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브라이언은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엄브렐러 소속 과학자로부터 ‘0번째 날’의 시작에 대해 듣는다. 이 모든 게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단순한 실수 때문이었다는 것. 브라이언은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이 정말로 소중한 무언가였다는 것을 깨닫고 기겁한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나의 손에 들려 있었다니. 이 영화를 관통하는 아이러니와 코미디는 다음과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에 일어난 수많은 결정적인 사건들이 사실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충동과 우연, 그리고 사소한 실수들이 겹쳐져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죽은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다시 살아나는 시리즈를 잭 크레거가 리부트한 목적이 아닐까. 그는 사람들이 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진지하게 보지 않기를 원한다. 이 시리즈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흥행엔 성공했어도 너무 많은 설정들이 덕지덕지 결합되어 무겁고 진지한 상태가 된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전체 세계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시리즈가 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은 시리즈를 다시 순수한 오락으로 복권하려는 잭 크레거의 전략이 돋보이는 영화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혹은 자신의 뿌리였던 게임과 코미디의 결합으로. 형태가 우스꽝스러울 순 있어도,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