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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응달진 숲에도 기어코 햇볕이 찾아든다 -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이자연 2026-08-27

응어리진 슬픔은 마치 뿌리내린 바위 처럼 깊고 단단하다. 그렇다면 바위가 되어버린 슬픔은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 걸까. 수학여행지에서 살해당한 막내딸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엄마 옥실(이정은)은 세딸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와 함께 범인을 납치해 경주로 떠난다. 법망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복수극을 마치 가족여행인 것처럼 교묘하게 꾸미는 것뿐. 누구도 자유롭게 웃지 못하는 가족사진처럼 네 모녀는 채 다 삼키지 못한 바위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정상적인 여자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김미조 감독은 경쾌하고 비애 섞인 피카레스크를 완성했다.

- 실제 가족과 함께한 경주 여행에서 이야기가 처음 출발했다고. 개인적인 기억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덜어내거나 지워낸 것은 무엇이었나.

실제로 내가 네 자매라 익숙한 관계들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나’와 서사가 너무 밀착해 있으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그래서 <경주기행>에는 오랫동안 언니들을 보며 느낀 감정들을 담되, 캐릭터는 그대로 가져오지 않으려 했다. 예를 들어 하루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큰언니가 이렇게 말하더라. “내가 엄마를 어떻게 만족시켜야 할지 늘 그게 고민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를 왜 만족 시키지?’ 언니들 각각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엄마가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 낯설고 생경한 감정들을 영화에 담았다. 셋째 언니가 실제로 프로레슬링을 해서 이런 특성은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 세 언니들도 영화를 보았나.

봤다. 슬퍼지려고 하면 그때마다 우리 가족의 모습이 나와서 집중이 잘 안됐다고 하더라. 슬퍼지려고 하면 “너 머리통 때린다”라고 하던 큰언니 대사가 나오고. 다시 슬퍼지려 하면 셋째 언니 프로레슬링 설정이 나오고. 주변 관객은 공감해 우는데 언니들은 계속 튕겨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너 언제까지 가족들을 그렇게 창작의 원천으로 이용할 거냐”고 하더라. (웃음) 아버지를 위해서는 영화 안에 작은 선물을 하나 넣었다. 옥실이 손수건에 수놓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우리 아버지 성함이다. 이전에 <갈매기>를 보시고 “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냐”고 하셔서 작은 선물을 하나 해드렸다. (웃음)

-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 배우는 각자의 색깔이 강한 배우들이다. 하나의 가족 단위로 비슷하게 묶으면서도 네 모녀 개개인을 독자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어떤 균형점을 잡았나.

가족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문장이 있다. ‘가족은 가장 강력한 적대자이자 가장 강력한 조력자다.’ 이 지점을 잘 반영하기 위해 각자의 욕망과 결핍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게 중요했다. 동시에 서로의 욕망과 결핍이 부딪히더라도 결국은 서로를 사랑하길 바랐다. 휴게소에서 영주가 엄마에게 맞으니 동주가 자기 뒤로 영주를 보내는 찰나의 장면이나, 옥실이 손 떠는 걸 눈치채고 장주가 걱정하는 장면처럼 작은 디테일들을 넣었다. 실제로 이토록 작은 신경씀이 하나하나 쌓일 때 결국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투닥거리다가도 결국 펜션 바닥에 다닥다닥 모여 누워 지난 가족여행을 떠올리던 것처럼, 그런 디테일이 모녀의 공통점과 차별성을 동시에 만들어준다고 봤다.

- 네 사람이 복수하는 과정은 상당히 서툴다. 범죄자 백상현(변요한)과 싸울 때 자꾸 삐끗하고, 다시 처음부터 돌아가야 하는 일도 생긴다. 다소 답답한 부분들을 더한 이유는.

사람들이 “난 저 사람을 죽일 거야”라고 말하는 건 쉽다. 그런데 내가 죽이고 싶었던 대상이 그렇게 팔딱팔딱 뛰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팔딱거리는 생물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나. 이들은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날파리 한 마리에도 기겁하는데 죽이려 마음먹은 대상이 저렇게 날뛰면 얼마나 무서울까. 복수라는 거대한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영화는 딸을 잃은 엄마의 복수로 시작하지만 결과적으로 복수 그 자체보다 남은 사람들이 상실을 견뎌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복수는 이 영화에서 어떤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나.

이 영화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복수 이야기, 또 다른 하나는 그 복수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진심이다. 그래서 계속 ‘복수극의 외피를 한 가족 이야기’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복수가 단순한 장치로 쓰인 건 아니다. 아보카도처럼 복수극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족이라는 핵심이 있는 거다. 그 과정에서 옥실이 느끼는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 처음부터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이야기를 동시에 가져가고 싶었던 이유기도 하다. 살인을 하면 안된다는 것,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원론적으로 옳다는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좋은 것만으로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사람이 자기 안에 놓인 불덩이를 꺼뜨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라면 결국 그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 나는 옥실을 통해 끝까지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 유사 가족 같은 관계도 등장한다. 필례(남권아)다. 필례는 너그러이 선을 넘어주는, 거의 준가족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수세에 몰리는 순간 도망친다. 결국 남는 건 혈연이란 의미일까.

사실 필례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라 언젠가 스핀오프를 하고 싶을 정도다. ‘The 필례’라고. (웃음) 현장에서도 필례 캐릭터가 매우 인기가 많았다. 필례와 옥실은 유가족 심리상담센터에서 만났다는 설정이다. 둘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한다.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인 필례 또한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처지를 겪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결국 가족이 가족을 돕는 거다. 필례가 떠나고 나서야 이 가족은 비로소 자립해 복수를 되새긴다.

- 옥실을 돕는 필례 역을 남권아 배우가 맡고, 백상현을 좇다가 옥실 가족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형사 역을 김정영 배우가 맡았다. 다양한 중년 여성 캐릭터가 영화의 구석구석을 점유하는 게 인상적이다. 특히 남성 부하를 양어깨에 달고 온 두 여자가 신경전을 세우는 장면은 시각적 희열까지 안겨준다.

<경주기행>의 세계 자체가 현실과는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제목처럼 우리가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과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기행적인, 다시 말해 의외성을 만들고 싶었다. 특히 묘한 배치나 인물들의 선택에서 생기는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하지 않을 것 같은 선택을 일부러 선택했다. 내가 그런 세계를 보고 싶었다.

- 경주는 관광지이자 수학여행지인 동시에 무덤과 유적이 밀집된 죽음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경주의 공간적 특성이 네 모녀의 이야기와 어떻게 맞물렸나.

이야기를 만들면서 ‘왜 경주여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경주 답사를 네번 정도 갔는데 그때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들이 경주로 간다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경주기행>은 애도의 과정이기도 하다. 펜션의 위치를 공동묘지 위로 설정한 것도, 계속해 묘지에 걸쳐져 네 모녀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영화가 결국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살풀이 영화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 <경주기행>을 준비하면서 유가족에 대한 자료조사를 많이 했다고.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감정이기에 자료조사를 정말 많이 했다. 다큐멘터리와 영상 자료, 유가족 당사자들의 수기와 에세이를 달고 살았다. 유가족이 된 인물들을 영화에 등장시키면서 가볍게 묘사하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한 다큐멘터리에서 피해자 유가족이 범인을 만나서 교도소에 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적어둔 쪽지를 계속해 열어보더라. 질문은 단순했다. “왜 죽였어?” 같은. 하지만 너무나 궁금한. 그때 정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이 범죄자에게 가장 묻고 싶은 게 무엇일까 생각하며 영화에 녹였다. 하지만 옥실은 끝내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일상 속에 트라우마가 드러나는 옥실의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윤지가 잠들었는지 확인하면서 코에 손을 대는 행동이 그렇다. 보통은 얼굴 앞에 손을 흔드는데, 옥실은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옥실이 펜션에서 눈을 떴을 때 딸들을 하나씩 세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걸 ‘수를 센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가족은 원래 여섯명이었는데 지금은 넷이 남은 거다. 옥실은 늘 수를 세는 여자다. 차 안에서 눈을 떴을 때도 수를 센다. 윤지에게 코를 대보는 것도 이 사람에게는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옆의 소중한 존재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이미 두번 겪었으니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작은 행동을 통해 옥실에게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 문제인지를 계속 보여주려 했다.

- 그럼에도 옥실을 단순한 피해자나 비극적인 어머니로만 묘사하지 않았다. 충동적이고 허술하고 때로는 웃기기도 하다.

최근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떠나 장례식에 갈 일이 많았는데,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울고만 있지는 않는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나른했다가 화도 냈다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한다고 오직 분노에만 가득 차 있는 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복수하러 가는 길에도 배가 고파 휴게소에 들르고. 싸우기도 하고, 실없이 웃기도 할 것 같다. 캐릭터가 우스워지지 않게 하려고 특별히 노력했다기보다는 내가 옥실을 우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태도가 캐릭터에도 반영된 듯하다.

- 네 사람이 하나의 공동 목표로 움직이지만 슬픔의 강도나 상실을 기억하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가족이기 때문에 잘 안다’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정말 모른다’가 공존하는 영화인데 어디에 더 가깝다고 느끼나.

나는 이 가족이 군대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유니폼처럼 일관되게 보이도록 가족 티셔츠를 입힌 것도 그 때문이다. 남들이 볼 때 ‘저 가족은 한마음으로 움직이나보다’라고 생각하길 바랐고, 옥실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복수의 여정 속에서 한명 한명 떨어져 나가나며 결국 자기의 진심을 드러내고 만다. 하나의 군체처럼 보이던 가족이 사실은 각기 다른 감정과 상처를 품은 개인들이었던 거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서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사랑하고 포용하는 것이 가족이다. 그래서 옥실은 옷을 한번도 안 갈아입는 반면, 자매들은 조금씩 옷을 바꿔 입는다. 단체복으로 출발했지만 개인 복장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거다. 그렇게 딸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는 것을 은유하고 싶었다.

- 후반부에 이르러 백상현을 끌고 산꼭대기에 오르는 옥실의 모습을 부감으로 촬영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각도가 아름다우면서도 산 안에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아슬아슬한 시점이 느껴졌다.

옥실이 백상현을 끌고 올라가는 모습이 굉장히 외로워 보이길 바랐다. 그전에는 딸들이 함께 있었지만 이제는 홀로 맨몸으로, 심지어 자기 살에 완전히 맞닿은 채 끌고 올라간다. 그때 개미 이미지를 많이 떠올렸다. 자기 몸보다 큰 식량을 들고 가다가 놓치면 어떻게든 아등바등 끌고가는 모습. 옥실은 그냥 무작정 끌고 간다. 손톱이 빠지고 피가 나고 실핏줄이 터지면서도 산을 올라간다. 다만 그 장면을 너무 잔혹하게만 묘사하고 싶지는 않아서 촬영적으로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담백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일부러 음악도 살짝 줄였다.

- 마지막에 옥실이 백상현을 나무에 매다는 장면은 중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 보통 사람을 죽이면 땅 아래로 매장하는데 옥실은 오히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한다. 온 힘을 다해 하늘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경주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미지는 교수형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사형 집행이 중단된 상태라 옥실이 자기만의 선고와 판결을 내리는 셈이다. 옥실이 백상현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처단해야 할까 고민했을 때 총이나 칼은 어울리지 않았다. 총은 너무 빨리 끝나고, 칼은 무력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옥실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옥실은 무엇을 원할까.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상현의 잘못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경주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상현을 매다는 게 핵심적인 모티브였다. 복수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쉬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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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