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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자 그대로도 비유적으로도 가족의 생존기 -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배우 앤 해서웨이, 이완 맥그리거
정재현 2026-08-27

위기를 겪는 가족 앞에 어느 날 육식공룡 떼가 밀고 들어온다. 우선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갈등 중인 배우자와 공조해야 맞고, 내 아이 그리고 내 강아지만 구해서는 절대 가족이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이웃의 안위도 챙겨야 한다.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이하 <오크 스트리트>) 속 드니스(앤 해서웨이)와 그렉(이완 맥그리거)은 그래서 장총과 배트를 든다. 당장 닥친 생명의 위협 앞에 싸움의 대의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이들은 함께 살아남기가 이 전시 상황의 유일한 복무신조임을 알고 있다. 서로의 아내와 남편, 두 아이의 엄마와 아빠로 살아온 10여년의 세월이 그 명분이다.

앤 해서웨이, 이완 맥그리거(왼쪽부터).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 출연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앤 해서웨이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의 영화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팔로우>는 내가 살면서 본 호러영화 중에서도 단연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왜 러닝타임 초반부터 이미 이 작품은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거란 예감이 들 때가 있지 않나. <팔로우>를 처음 볼 때가 그랬다. 그래서 데이비드의 신작 시나리오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됐다. 이후 대본을 읽기 시작했는데 20페이지쯤 읽었을 때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더라. 서사의 급격한 전환을 마주하고 무척 놀랐다. 속으로 ‘세상에, 단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스토리인데?’라고 외쳤을 정도다. 독창적이고 모험적인 데다 대담하기까지 한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열심히 촬영한 영화 전체를 보고 나니 내가 텍스트에서 느낀 모든 장점이 여실히 살아 있어 재밌더라.

이완 맥그리거 <오크 스트리트> 시나리오가 묘사하는 가족의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흥미로웠다. 플랫 가족이 처음엔 교외 배경의 완벽한 미국식 핵가족처럼 보이는데 이 설정만 두고 보면 관객들이 이미 빤히 아는, 그저 그런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다 아내와 남편, 혹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아주 현실적인 접근 덕분에 빠르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애니(앤 해서웨이)가 언급한 지점에 나 역시 감응했다. 20페이지를 읽었는데 갑자기 공룡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X됐다는, 욕해서 미안하다. 젠장맞을? 이것도 아닌데…. 그래, ‘아이고, 내가 읽는 게 뭐지?’ 싶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내내 이어지는 와중에 부부와 자녀, 성인과 청소년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겪는 경험을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정밀하게 탐구하는 작품이었다.

- 앤 해서웨이는 <아마겟돈 타임>에서, 이완 맥그리거는 <트레인스포팅>에서 일찍이 1980년대에 사는 인물을 연기한 바 있다. 시대성을 체화하는 작업이 이 작품에서도 중요했나.

앤 해서웨이 <오크 스트리트>를 포함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첨단 장비가 등장하지 않아서 좋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려주는 기기가 없기 때문에 오직 사람들이 재치와 지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제의 해답을 구글링할 수 없는 시대니 말이다. 직접 삶에 몰입해 부딪힐 수밖에 없다. 엘보 그리스(Elbow Grease)라는 영어 관용구가 있다. 팔꿈치에 기계 윤활유를 바른 듯 움직이라는 표현으로, 힘과 끈기를 들인 채 직접 몸을 움직여 원하는 바를 얻어내라는 뜻이다. 이같은 시대정신이 드니스에 접근하는 방식에도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 드니스는 겉보기에는 다정한 가정주부지만, 훌륭한 작문 실력과 함께 역량이 뛰어난 여성이다. 단지 시대적 배경 때문에 드니스의 진가가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다. 오크 스트리트의 주민들은 드니스를 그저 다정하고 평범한 주부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완 맥그리거 1980년대는 모두가 기술이 없는 삶을 경험한 마지막 때였다. 내가 살아봐서 안다. (웃음) 1971년에 태어나 198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는데 그땐 참으로 자유로웠다. 게다가 나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한밤중에 돌아와도 안전했다. 휴대전화도 없었고 아무도 우리가 어디서 뭘 하는지 몰랐는데 말이다. 그런 온전한 자유가 1980년대에 제작, 개봉한 여러 영화에 살아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나도 브라이언(크리스천 컨버리)처럼 허구한 날 마을에서 자전거를 탔다. 지금은 아이들과 아주 잠시 떨어져도 스마트폰으로 금방 찾을 수 있는데, 1980년대가 배경인 우리 작품에선 아이가 한밤중에 사라지면 무장한 부모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 거기서 오는 서스펜스가 상당하다.

- 공룡의 존재를 상상한 채 다양한 액션과 리액션을 선보여야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공룡들에 관한 구체적 이미지를 예습했나.

이완 맥그리거 촬영 준비 중에 LA 자연사 박물관에 갈 일이 있었다. 아들이 파티에 간다고 해서 픽업차 따라갔다가 공룡 뼈 앞에서 사진을 찍고 데이비드에게 나 지금 취재 중이라고 셀피를 찍어 보냈다. (웃음) 촬영 전 데이비드가 신마다 등장할 공룡의 그레이스케일 이미지를 보여줬다. 이를테면 그렉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바비큐 그릴 뒤에 숨어 있다가 고개를 들어 공룡을 처음 보는 숏을 찍을 때, 눈앞에 어떤 얼굴과 크기의 공룡이 있을지 염두에 둔 채 연기할 수 있었다.

앤 해서웨이 2022년에 처음 대본을 읽고 데이비드에게 공룡을 어떻게 구현할 건지 물었다. 그때 그는 애니매트로닉스와 퍼페트리를 융합해 공룡을 만들 거라고 답했다. 큰 기대를 품고 2024년 촬영장에 갔더니 웬걸, 스태프 일동이 “제작비가 비싸서 공룡은 CG 처리할 거예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웃음) 그래서 당황했다. 나는 오히려 현장에 모형이 있을 테니 굳이 공룡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훌륭한 VFX팀이 언제든 모니터에 공룡을 띄워 보여주었다.

- 카메라와 사진 촬영에 대한 드니스의 열정이 여러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앤 해서웨이 드니스에겐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가의 기질이 있는데도 이를 표출할 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 그래서 드니스가 글쓰기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기 전까지 자신을 충만하게 만들 수단을 이곳저곳에서 찾아다녔을 터다. 그중 하나가 사진 촬영이지 않았을까. 사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원체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를 위하는 성향이라 여기저기 렌즈를 들이민다고 보았다.

- 영화를 보다 보면 가족애의 위기와 봉합이라는 서브텍스트가 공룡 호러 못지않게 중요하단 걸 알 수 있다. 두 배우에게도 이 점이 주효했나.

이완 맥그리거 애니 그리고 두 청소년 배우와 함께 작업하며 가장 좋았던 점이 뭔지 아나. 우리 스스로도 굳게 믿을 수 있을 만큼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연기했다. 세트장에 출근할 때면 늘 같은 장소에 넷이 모여 앉았고, 촬영하지 않는 날에도 늘 함께였다. 공룡들의 액션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글자 그대로도 비유적으로도 가족의 생존기를 다룬다.

앤 해서웨이 무언가를 상실하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자각하지 않나. 플랫 가족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새로운 환경으로 인해 이들은 서로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며 신뢰하는지를 깨닫고, 서로의 소중함을 재인식한다. <오크 스트리트>가 그 과정을 오직 ‘극장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필치로 아름답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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