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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비대면 이후의 얼굴들 - 김소희 평론가의 <미명>

<미명>

<미명>에서 인물의 얼굴이 카메라에 온전히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얼굴은 카메라를 등진 채 숨겨지거나, 고정된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 얼굴은 어둠 속에서 카메라 앞을 스쳐 지나가며 뚜렷하게 식별되지 않는다. 인물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나는 드문 경우, 그 얼굴은 대부분 어딘가에 비친 상태다. 물론 엄밀히 말해 모든 이미지가 카메라에 비친 형상이긴 하나, 온전히 드러난 얼굴과 카메라 사이에는 늘 하나의 틀이 더 존재한다. 논문 심사를 위한 온라인 회의 장면에서 원영(이원영)의 정면 얼굴은 처음으로 드러난다. 온라인 회의의 특성상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모니터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실제 배경을 대체한 프라이버시용 연두색 풀 이미지는 논문 통과 여부를 논하는 말하는 얼굴과 불화하며 서로의 이질성을 강화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고 홀로 집으로 돌아온 원영이 목소리를 잃게 된 상황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는 다소 과장된 표정의 얼굴로 표현된다. 이때 얼굴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상태다. 온라인 회의 속 얼굴과 거울 속 얼굴은 어딘가에 비친 상태 외에 연기하는 얼굴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전자가 사회적 자아를 연기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B급 호러영화에 출연한 아마추어 연기자를 연상시킨다.

<미명>은 ‘가내수공업’이라고 일컬어지는, 감독이 연기는 물론 촬영, 편집 등 제작 전반을 겸한 영화다. 하지만 프레임 안에서 얼굴을 내모는 방식은 일인칭 가내수공업 영화가 가진 익숙한 느낌에 균열을 낸다. 촬영자와 배우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소규모 제작 시스템에서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이에 맞춰 배우가 동선을 조정하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하지만 <미명>에서 인물들은 프레임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대신 프레임의 안과 밖에 걸친, 어딘가 잘린 상태로 등장한다. 그렇게 드러난 이유가 좁은 실내 공간에서 주로 촬영한 현실적인 조건에만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프레임 안과 밖에 걸친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배우들이 제작을 겸하며 프레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해석 역시 딱 맞는 비유 같진 않다. 원영의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식탁 장면에서 화면에 보이는 건 원영의 뒷모습이며, 정은(임정은)은 식사 준비를 마친 뒤 황급히 집을 빠져나간다. 텔레비전 위치로 인해 원영이 앉는 의자와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하기는 어려웠을지라도, 정은이 잠시 의자에 앉는 장면을 추가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영화의 방식은 말하는 인물이 카메라 앞에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저항하며 그러한 전제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군다.

스크린 타임

<미명>

얼굴을 활용하는 영화의 방식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사운드와 이미지의 분리를 통해 사운드를 강조하는 측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얼굴은 은유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얼굴은 말하는 입을 가진 표면으로, 소리와 이미지의 싱크가 중요한 장소다. 말하는 얼굴이 아니라면 사운드와 이미지의 분리는 그리 거슬리지 않을 수 있다. 유성영화 시기가 도래하며 말하는 얼굴과 사운드의 조응은 특히 중요해졌다. 유성영화가 불러온 변화의 핵심은 ‘말’이 아니라 ‘말’과 ‘이미지’의 조응에 있다. <미명>은 얼굴과 목소리의 내몰림과 상실을 통해 이를 상기시킨다. 목소리의 상실은 유성영화 시기에 되찾은 목소리를 다시 잃어버려야 할 필요를 역설한다. 목소리의 상실이 얼굴의 상실로 대체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하다. 목소리를 잃은 원영은 얼굴 없는 자막으로 지인과 온라인에서 대화한다. 상대의 얼굴과 원영의 자막을 교차하며 목소리 상실이 얼굴의 상실로, 얼굴의 상실이 자막의 귀환과 스크린이라는 얼굴의 도래로 회귀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오프닝 시퀀스는 스크린의 회귀라는 측면에서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식탁에서 어른들이 대화하는 장면은 통상의 대화 장면과는 달리, 대화와 동떨어진 이미지를 보여준다. 두 아이가 어른들이 모여 앉아 대화하는 식탁 옆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태블릿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 어른들이 대화하는 목소리는 또렷하고 분명하기에,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 기울이게 된다. 부부의 관계는 특정한 상황으로 묘사되는 대신, 원영쪽 친척들이 정은을 칭찬하는 말과 이에 대한 부부의 반응을 통해 간명하게 표현된다. 보이는 이미지보다 말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이 장면은 이미지에 대한 목소리의 우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핵심은 이미지와 사운드간의 우위보다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관계 맺는 방식이다. 이들이 나누는 말은 통상적인 대화 장면처럼 찍혔다면 중요하게 인식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다소 엉뚱한 이미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즉 말과 이미지의 어긋남이 되레 말의 내용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떨어진 이미지가 말을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미지는 말에 소속되지 않는 자율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태블릿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영상을 관람 중임이 소리를 통해 유추되는데, 어떤 영상을 보고 있는지는 불분명하기에 아이들이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중이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이것이 허황된 가정이라면 적어도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말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을 뿐, 완전히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른 한편, 영화가 얼굴을 활용하는 방식은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교란한다. <미명>은 인물이 카메라의 약속된 구도 속에 인위적으로 놓이는 방식을 피한다.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배우들은 다큐멘터리 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된 존재들과 어느 정도 유사해진다.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영화가 인물의 얼굴을 담는 방식에서 온다. 배우는 카메라를 감당하며 연기하고 존재하는 대신, 카메라가 된 일상 안에서 스치면서 포착된다. 카메라는 집에 고정된 채, 인물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점프컷으로 연결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다. 고정된 카메라가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내용은 일상의 흐름보다는 극단적인 변화다. 삶에서 죽음으로. 존재에서 부재로 옮겨가는 극적인 서사는 어쩌면 일상화된 카메라에 가장 적합한 이야기일 수 있다.

부재하는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추억이 담긴 사진을 들여다보는 식의 시각적인 차원이 아니라, 후각과 관련된다. 집이 중심 장소인 영화에는 당연하게도 식사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생일을 맞은 원영의 식사 장면에서 인물의 등 뒤에 있던 카메라는 정은의 퇴장과 함께 아마도 정은의 자리일, 빈 의자가 놓였던 위치로 옮겨진다. 그렇게 카메라는 인물이 있어야 할 위치를 대신한다. 원영의 생일을 위해 차려진 음식은 정은의 손길을 기억하는 마지막 존재 증거가 된다. 시간의 변화를 냄새와 부패를 통해 드러내는 음식물은 존재와 시간을 드러내는 매개다. 원영은 부패한 음식의 냄새를 맡고 정은의 옷에 남겨진 체취를 맡는다. 부패한 냄새는 죽음의 냄새로 온 집안을 뒤덮고 냄새를 몰아내기 위해 집 전체를 뜯어내는 상황에 도달한다. 부재한 것을 이미지라는 시각적 보충물로 바꾸는 대신, 카메라로 포착할 수 없기에 부재와 유사한 후각을 매개로 부재를 통해 부재를 드러낸다.

비대면의 끝

<미명>

한편 얼굴을 회피하는 영화의 방식은 동시대 영상 문화의 흐름에 역행한다. 집과 얼굴은 카메라에 기반을 둔 놀이 문화와 크리에이터가 결합한 반응형 온라인 영상 문화의 조건 속에 과잉된 이미지이기도 하다. 과장을 보태 집과 말하는 얼굴이 있다면 곧 콘텐츠가 생성된다. 이러한 경향이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강화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팬데믹과 결합해 사적 영상의 부흥이 다른 의미망을 갖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팬데믹은 온라인 매체를 통한 연결이 젊은 세대의 사회문화적 요소에 한정되던 것을 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생존 망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라는 말이 안도감과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동시에 운반한다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나로 인해 다른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의 공존은 세계와 개인이 공명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체득한 하나의 태도가 되었다.

12·3 비상계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가 모두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두려움과 분노, 안도감이 다른 국면을 맞은 사건이다. 그 바탕에는 다양한 역사적 뿌리가 얽혀 있다.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비대면의 시간>은 12·3 비상계엄의 바탕에 6·25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무의식을 뿌리 깊게 잠식해온 반공 정서가 있음을 되짚는다. 귀신 찾는 앱이 등장하는 장면이 상징적으로 드러내듯, 과거의 망령은 유령이라는 놀이 문화와 공명한다. <미명>의 카메라는 텔레비전을 통해 송출된 뉴스 이미지로 12·3 비상계엄을 직접 인용한다. <미명>에서 12·3 비상계엄은 텔레비전을 통해 목격한 자의 이야기이자, 여전히 집에 남아 있는 자의 이야기로 요약된다. 식탁과 마주 보는 위치에 놓인 텔레비전은 원영이 밥을 먹는 장면과 동행한다. 인물들은 텔레비전 뉴스 보도에 반응하거나 논평을 덧붙이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인물 사이의 실제 거리는 가깝지만, 이들은 서로 분리되어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이 난데없이 방송 화면에 등장해 계엄 선포문을 낭독하는 순간, 아마도 이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대다수의 사람처럼 영화 속 인물들 역시 텔레비전 화면에 반응하게 된다. 야식을 먹던 부부는 갑작스럽게 뉴스 속보로 날아든 계엄 선포 장면을 목격하고 당황해한다. <미명>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비상계엄을 돌아본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송출되던 순간, 죽은 미디어였던 텔레비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난다. 일방향 매체인 텔레비전이 가장 일방적인 상황을 중계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소통의 욕구와 필요가 한꺼번에 터져나오게 되었다.

12·3 비상계엄의 순간은 영화의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다. 계엄 이후에 행정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책을 발표하는 뉴스가 초반에 등장한 바 있으니, 시간을 역행한 배치다. 온라인 회의나 소통을 통해 비대면의 시간이 상기된 바, 이러한 흐름은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이동을 강조한다. 계엄은 비대면의 끝이자, 대면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늦은 밤 국회 앞에 몰려들었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과 헌재 앞, 광화문광장 등을 오가며 집회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남태령’이라는 기념비적인 순간도 존재했다.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이동은 원영에게는 정은과 함께했던 순간으로의 회귀라는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다. 정은의 죽음은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상황으로 풀이되기에 비대면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결국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배치는 세상에 빼앗긴 시간을 되찾는 몸짓이자, 세상과 개인이 연결된 시기로의 복귀다.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에서도 얼굴은 흐릿한 형태로 드러난다. 두 사람의 사진은 장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어느 하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 얼굴은 클로즈업으로 강조되는 커플 사진 속 마지막 얼굴을 향해 나아간다. 서로 맞댄 포즈의 사진 속 얼굴은 빛에 의해 지워져 있다. 마치 얼굴이 스스로 빛을 내뿜는 발광체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 이미지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얼굴은 무언가를 비추는 빛이기 때문이다. 이때 얼굴은 비춘다는 점에서 카메라와 비슷해진다. 원영이 유령이 된 정은에게 ‘당신 거기 있다면 불을 켜줘’라고 지속해서 요구하는 것이 일견 온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말이 그의 존재가 일종의 ‘빛’이며, 무언가를 비추는 대상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빛나는 얼굴을 매개로 한 존재는 빛을 내뿜는 텔레비전과 유사해진다. 한때 모두의 시선을 모았던 텔레비전은 누구도 거기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기에 볼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무언가가 여전히 존재한다. 부재하지만 분명한 존재와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대상이 교차하면서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존재론이 쓰인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언가를 비추기 때문이다. 영화는 매체와 결부해 무언가를 비추는 대상으로 얼굴을 의미화하는 가운데, 우리가 지나왔고 여전히 지나는 중인 (비)대면의 시간을 비로소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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