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단골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25년 전 작품과 함께 30회째 영화제에 동참했다. 그의 2001년작 <이치 더 킬러>가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스트레인지 오마쥬’ 섹션에 초청받은 것. 마스터클래스를 앞두고 만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작업할 당시에는 이 영화가 일본을 넘어 해외에 알려지고, 오랫동안 회자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라며 추억에 젖었다.
야마모토 히데오 작가의 만화를 각색한 <이치 더 킬러>는 사디스트 암살자 이치(오모리 나오)와 마조히스트 야쿠자 가키하라(아사노 다다노부)의 조우를 하드고어 액션으로 소화해 악명이 높다. 고통을 갈구하는 남성들이 서로를 쫓으며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피비린내를 풍긴달까.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야마모토 히데오 작가라면 어떻게 영화를 만들지 상상하며 그에게 동화해 제작했고, 나는 그를 어시스트한다는 개념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전했다. 원작을 향한 리스펙트에서 비롯된 접근법이었다.
“자기 안의 어두운 그림자를 일깨워주는, 독특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만화로부터 자유로움을 느꼈다. 작화는 그로테스크하지만. 독자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듯했다. ‘이런 쾌감, 당신도 부정할 수 없잖아?’ 나도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감동보다는 해방감을 추구한다. 관객을 울리기보다는 그들 내면의 규제를 풀어주고 싶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그 연장선상에서 마음에 드는 대사를 꼽았다. 무참히 살해돼 장기를 드러낸 시체들을 내려다보는 가키하라의 독백, “인간의 장은 하나의 줄기로 연결되어 있지”. 사소한 장면일지 몰라도 “일종의 진실에 다가가는 순간”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이 신을 포함해 수많은 대목에 과감한 특수효과가 필요했다. 지금 <이치 더 킬러>를 다시 본다는 것은 당대의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표현 수위를 극단으로 끌어올린 예술가들의 집념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 또한 “정해진 예산과 시간 안에서는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돌이켰다. “늘 10점 만점에 1점에서 3점 정도 해내는 것을 기본이라고 여긴다. 그래도 1을 더해 4를 해낼 수 없을지 고민할 뿐이다. 이런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이치 더 킬러>를 찍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이지 않았을까? 쉽지 않은 연기에 도전해준 배우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현장을 즐겼다.”
최근 젊은 감독들에게는 워낙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는 탓에 주변의 요구도 클 것 같다며 우려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일본영화계를 주시하는 한국 관객에게 자신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인물도 소개했다. 2020년 영화 <페이블>로 부천을 방문했던 에구치 간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8부작 넷플릭스 시리즈 <리키시>는 한컷 한컷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잘 만들어졌더라. 내가 못하는 부분을 끝까지 해내는 힘에 감탄했다. 부천의 관객들에게 꼭 감상해볼 것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