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기획] 스필버그의 (두려운) 빛 - 조명의 형식미로 본 <디스클로저 데이>
이우빈 2026-06-26

*<디스클로저 데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스클로저 데이>

“여러분.”(listen) 얼핏 열린 결말로 보이는 마거릿(에밀리 블런트)의 마지막 대사 이후, 인류는 밝은 미래를 마주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인 공상이 아니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화면의 단서들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다. <디스클로저 데이>는 SF로 국한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며, 망상의 유희만으로 그 결말을 단언할 순 없다. 그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허구보다 진실에 가까운(more truth than fiction)” 작품이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디스클로저 데이>는 픽션보다 논픽션, 엄밀하게는 페이크다큐멘터리에 가깝다. 후반부에 이르러선 1947년 로즈웰 추락 사건부터 발견된 외계인 기록 영상을 엮으며 스필버그가 쉬이 다루지 않았던 파운드 푸티지의 방식을 채택하기까지 한다.

페이크다큐멘터리의 질감을 그의 영화에서 본 적은 드물다. 온갖 상상의 산물과 허구, 전설, 공상으로 지구인들을 매료했던 연출자에게 현실적 파운드 푸티지의 활용은 짐짓 어색하다. 으레 할리우드 최고의 ‘이야기꾼’(스토리텔러)으로 불리는 스필버그에겐 꽤 이질적인 선택이다. 다만 이유는 명확하다. <디스클로저 데이>의 중핵은 스토리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시지각적 설계다. 외계 존재를 세계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만들기 위해 암암리에 구성된 장치들이 중심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장치는 빛이다. <디스클로저 데이>는 스토리텔링의 장인 스필버그가 아닌 라이팅(lighting)의 작가 스필버그의 영화다.

모순의 세트장

<우주전쟁>

<디스클로저 데이>엔 두개의 세트장이 등장한다. 하나는 마거릿이 일하는 TV방송국이다. 다른 하나는 휴고(콜먼 도밍고)가 마거릿의 어릴 적 집을 지어놓은 스튜디오다. 세트장의 통상적 공통점은 인공조명이 쓰인다는 것이다. 외부의 불필요한 빛과 소리를 차단하고 최대한 연출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오디오-비주얼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휴고의 스튜디오는 어색하다. 스튜디오를 지은 대규모 창고의 커다란 창문 너머로 강력한 자연광이 비친다. 내부에 인공조명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광량이다. 더욱 이상한 점은 창문 밖의 자연광이 지나치게 동그랗고, 언제나 마거릿의 뒷면을 비추는 역광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 표면적 사실은 합리적 추론을 부른다. 휴고는 이 스튜디오의 연극을 일부러 바깥에 노출하고 있으며, 그가 협조하는 외계인(우주선)이 연극을 관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기묘한 빛의 형상은 항시 외계인의 지표로 여겨져왔다. <불꽃>(1964)부터 <미지와의 조우>(1977)의 모선, <우주전쟁>(2005)의 각종 광선도 마찬가지였다. 스필버그 스스로가 자주 밝혔듯이 그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밤하늘의 별을 외계 존재와 동일시하는 이다. <디스클로저 데이>의 실질적 전편이라고 언급했던 총괄 제작 TV시리즈 <테이큰>(2002)은 가장 확실한 사례다(<씨네21> 1560호 ‘<디스클로저 데이>를 예측하기’). 여기서 인간들은 모종의 광휘에 휩쓸리며 우주선에 납치되고, 그 내부는 새하얀 화이트룸이다. <디스클로저 데이>에서도 이 설정은 반복된다. 어린 마거릿이 헨젤과 그레텔의 집으로 오인한 우주선이 비정상적 주황빛을 내뿜고, 안쪽은 스필버그의 팬들에게 익숙한 화이트룸이다. 이처럼 <디스클로저 데이>는 스필버그적 빛, 즉 외계인의 신호를 화면에 드러내면서도 그 의미를 암시적으로 숨기는 극상의 속임수를 보여준다. <디스클로저 데이>를 두고 어딘가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매끄러운 스토리보다 빛의 내러티브를 우선시한 감독의 선택 때문일 것이다.

마거릿이 집 세트장에 들어가자, 창고의 창문과 같이 집 안의 커튼에도 강한 전구색의 조명이 비친다. 그러나 워덱스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바깥 하늘은 살짝 흐린 정도다. 자연광이 이렇게까지 세트장을 비출 순 없는 날씨다. 현관에 인공조명 장치가 있지만 창고 전체에 그만한 자연광이 비친다면 별 쓸모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마거릿의 침실에 있는 작은 수면등은 이상할 정도로 밝다. 요컨대 이 세트장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빛뿐이다. 빛으로 외계 존재를 암시하려는 영화의 작위적 연출이 없다면 성립이 불가능한 장면들이다.

백미는 마거릿과 다니엘(조시 오코너)이 본격적으로 과거를 들여다볼 때다. 마거릿 주변이 암전되고 그의 뒤(조력자들이 있는 쪽)에 역광이 비치며 머릿결의 색이 날아갈 정도로 빛이 강해진다. 그런데 마거릿이 방으로 들어가 조력자들을 향할 때도 그에겐 역광이 드리운다. 마거릿이 피사체일 땐, 주광 없이 역광만이 양방향으로 존재하는 모순이 형성되는 것이다. 마거릿이 볼 수 없는 어딘가에서 빛(외계인)이 그를 계속 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외계인들이 그를 지구의 대사(大使)로 각성시키기 위해서 관찰과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

빛의 응시

<디스클로저 데이>

두 번째 세트장, 결말의 방송국으로 갈 차례다. 마거릿과 다니엘이 외계 존재의 폭로를 도모하자, 워덱스는 변전소와 비상 발전기를 부숴 세트장의 빛을 없애려 한다. 이 행위는 방송 송출의 차단을 넘어, 빛이라는 외계 존재의 이미지를 화면에서 없애려는 시도로까지 보인다. 하지만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누군가를 밝히기 위한 일반적 빛과 외계인의 신호로 존재하는 특수한 빛은 엄연히 구분된다. 마거릿을 비출 수 있는 빛은 후자다. 워덱스가 총과 손전등을 들고 방송국에 진입하긴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들의 전등 빛은 마거릿의 얼굴에 닿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방송국 바깥에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켠 시민들의 빛도 마거릿을 비추지 못한다.

제인(이브 휴슨)이 마거릿에게 기기(the device)를 전하니 빛이 복원된다. 이내 <디스클로저 데이>는 영화에서 가장 커다란 반전을 일으킨다. 여기서 반전은 으레 말하는 스토리텔링 범주에서의 그것이 아니다. 방송국의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켜 마거릿의 얼굴 정면에 강한 빛을 직사하는 것이다. 역광의 대상이던 마거릿이 정면광의 주체가 된다. 빛의 완전한 반전이다. 마거릿은 외계 존재들의 관측 대상이 아닌 진정한 대변인으로 거듭났다. “여러분”(listen)이라 운을 떼는 마거릿은 카메라의 디스플레이 너머로 보인다. 오른쪽 위의 인공조명은 우리(관객) 방향을 비추고 있다. 마거릿은 저쪽 세계로 건너갔으며, 외계인의 관측 대상이 된 것은 이제 우리다.

<우주전쟁>의 마지막, 페리어(톰 크루즈)가 보스턴에 있는 전처에게 아이들을 데려다줬을 때 거리의 빛은 이전 시퀀스들과 달리 비현실적이다. 꿈만 같은 비극의 기운을 자아낸다. 이에 비해 <디스클로저 데이>의 마지막은 대략 현실적이고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맞은편의 인위적 빛이 어떤 의미인지 복기한다면 달라진다. 외계인은 가공할 만한 초능력을 지녔음에도, 인간의 공감 능력을 진화의 필수 조건으로 연구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 하나 그들은 공감 능력 따위 먼 별에 날려버린 작금의 지구를 경험했다. 이 끝에서 그들은 두려울 정도로 선명하게 우리를 응시하며 영화를 끝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새로운 관찰 대상이 되거나, 공감 능력을 상실한 연구 대상으로 폐기될 처지다. 폭로의 날이 도래했으나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인류는 외계의 기묘한 빛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잠깐의 경외에 빠졌을 뿐이다. 이렇게 스필버그는 인류 문명이 자립할 정도의 성숙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의문에 부치며, 묵시록적 빛으로 꾸며낸 또 하나의 걸(괴)작을 남겼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