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를 무사히 치른 뒤 집행위원장의 자리는 엄태화, 장재현 감독에게서 윤가은, 이상근 감독에게로 이어졌다. 지난 20여년의 역사가 방증하듯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 역시 신진 창작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 이들이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하는 프로그램들로 꾸려졌다. 영화와 후배 감독들에 대한 윤가은, 이상근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의 깊은 애정을 전한다.
- 지난해 재개된 영화제를 치른 뒤 올해는 집행위원장으로서 미쟝센을 이끌고 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이상근 4년의 공백을 깨고 미쟝센이 돌아왔을 때 전처럼 관객들이 반길지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전한 지지를 확인했다. 올해는 개최일을 전과 같이 6월로 옮겼다. 그만큼 준비 기간이 짧아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윤가은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내부를 살펴보니, 다들 이렇게 힘들게 준비해 영화제를 치르는구나 싶더라. 많이 배웠다. 감독 중심의 영화제라는 미쟝센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창작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고민하는 자리를 자주 가졌다.
- 지난해 67편, 올해 44편으로 경쟁작 편수가 감소했다.
이상근 60편 내외의 영화를 트는 게 미쟝센의 관례와 다름없었지만 상영작 편수가 정해졌던 건 아니다. 지지하는 영화가 많냐 적냐에 따라 해마다 상영 편수를 다르게 갈 수 있지 않겠냐고 윤가은 감독과 의견을 나눴다. 편수의 변동 자체보단 심사를 더 신중하게 해보자는 취지가 반영됐다.
윤가은 만들어지는 단편영화와 영화제 출품작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도 다양해졌다. 그럴수록 영화란 무엇이며 영화의 어떤 점을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심사위원들에게 극장에서 관객을 만났으면 싶은 작품을 고심해 골라달라고 전했고 최종 44편이 선정됐다. 이 역시 정해진 기준은 아니며 내년의 집행부, 심사위원의 의견에 따라 상영 편수는 바뀔 수 있다.
- 한편 영화제 기간은 하루 늘고 개별 경쟁작의 상영 횟수도 2회에서 3회로 늘었다.
이상근 지난해에 영화제를 치러보니 기간도 짧고 상영 회차도 적게 느껴져 변화를 주었다. 감독이라 불리며 관객을 만나는 자리가 창작자들의 인생에 큰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윤가은 영화는 결국 관객을 만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재하는 관객을 마주하면 다음 작품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과 책임감을 얻는다. 그런 경험이 감독들에겐 무척 중요하다.
- 예심 프로세스도 달라졌다고.
윤가은 예심위원들이 전부 감독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이상근 감독이 줬다. 그게 미쟝센의 전통이기도 하고.
이상근 좋은 단편을 많이 발표했거나 장편을 한편 이상 만든,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감독 위주로 섭외했다.
윤가은 예심위원들에게 심사 잘되어가냐고 물으니 서로 하나도 안 맞는다며 어떤 작품을 본심에 올릴지 치열하게 다투는 것 같더라. (웃음) 결과적으로 재밌게 심사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상근 모든 작품을 복수의 심사위원이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떨어질 일은 없으니 자기 영화가 선정되지 않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않길 바란다.
- 미쟝센에 초청된 감독들과 선배 감독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OFF THE RECORD’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영화제에 앞서 이미 진행됐다던데.
이상근 언론 취재나 휴대폰 녹음 없이 오직 감독들끼리 자신의 경험과 업계의 노하우 등을 솔직하게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김창옥쇼>처럼 꾸려보고 싶어서 내가 마이크를 들었다.
윤가은 엄청 열심히 준비해왔더라. (웃음) 감독은 회사처럼 공채로 뽑히는 게 아니다 보니 서로 입봉 계기와 과정이 전부 다르다. 술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할 법한 이야기를 술 없이 경쟁작 감독들과 나누고 싶었다.
- 김민하, 이솔희, 이상민 감독의 단편을 상영한 뒤 대화를 나누는 ‘딥 포커스: 창작자 토크 만나고 싶었어, 네 영화. 미쟝센에서!’도 집행위원장들의 아이디어로 신설됐다.
이상근 미쟝센 공백기 동안 좋은 영화를 발표한 감독들에게 상영 기회를 주고 싶었다. 단편뿐 아니라 장편 데뷔까지 한 세 감독을 초청하자고 의견이 모였다. 얼마 전 김민하 감독을 만났는데 이상민 감독과 둘이 미쟝센에 초청되지 못했던 한을 풀었다고 하더라.
- 감독, 제작자, 투자배급사, 플랫폼 리더가 패널로 참여한 ‘딥 포커스: What’s Next? 신진 창작자를 찾습니다.’도 진행된다.
윤가은 ‘OFF THE RECORD’가 창작자 중심의 프로그램이라면 그 밖의 산업 관계자들로부터 이들이 업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들을 수 있는 자리다. 여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올해 미쟝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준다면.
이상근 사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4월부터 영화제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대감에 글도 잘 안 써진다. (웃음) 미쟝센은 한국영화계 태초의 놀이터 같은 것 아닌가. 놀다보면 매번 새로운 아이들이 나타나고 그러면서도 과거의 추억은 잊히지 않는다. 미쟝센이 그런 놀이터로 다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시원한 극장에서 재밌는 영화를 많이 만나시기를.
윤가은 감독을 현장의 대장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예산이란 현실적 문제와 싸우고 여러 의견을 조율하며 섬처럼 외롭게 일할 때가 많다. 그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지 않나. 애초 우리가 왜 영화, 영화제를 좋아했는지를 재확인할 기회다. 장편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차인데 미쟝센 상영작들은 여전히 열심히 챙겨보려 한다. 어떤 새로운 창작자, 멋진 경쟁자들이 나왔는지 궁금해서다. 그 흥분을 다 같이 느껴주시면 좋겠다. 상영작이 전부 매진됐지만 영화제의 묘미는 역시 취케팅이다. 마지막까지 취소표를 노려보시길. 그리고 올해 미쟝센 굿즈도 정말 예쁘다! 현장에서 보면 절대 놓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