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록 감독의 데뷔작 <충충충>의 고등학생 용기는 악당을 무찌르는 영웅을 꿈꾸지만, 그가 구하려는 세상은 겨우 좋아하는 여학생 한명으로 좁혀져 있고 끝내 사랑을 인정받지도 못한다. 인스타그램 팔로 수가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저속한 세상을 향해 소년은 결국 칼끝을 들이민다. 그러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 성장이라면, 용기는 성장하지 않는다. 한창록 감독은 종종 사이키델릭한 이미지로 청춘 인물들을 도피시킬지언정 용기라는 소년을 동정하거나 연민하지는 않았다. 배우 주민형 역시 용기를 변호하는 대신 한 문장으로 끌어안는다. “그 애는 인생을 일찍 소진했다. 미련없이 자기답게.”
“나는 그때 죽었었는데, 지금 어떻게 여기 와 있는 거지?” 자신이 연기한 한 소년의 삶이 ‘소진’될 때쯤 어느 신인배우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첫 장편 주연작을 마주한 주민형이 “솟구치는 감격과 괴로움을 달래려 부산에서 내내 술을 많이 마신” 이유다. 배우와 배역이 한데 엉켜 불타고 있다가 그 무렵 처음 작별한 셈이다. 그러나 둘은 헤어지자고 해놓고도 몇번이나 다시 포개어지는 연인처럼 아직도 함께인 듯했다. 주민형은 “용기를 떠올리면 그때도 지금도 자주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배역을 떠나보내는 일이 이토록 더딘 것은 그가 “한때 용기 같았던 적 있고, 카메라 앞에서는 한동안 정말 용기로 살았기 때문”일 테다.
주민형은 단편영화 감독인 형을 따라 어릴 때부터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매체의 문법을 익혔고, 어느새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세운 이후 무작정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말보다 몸으로 전하는 것이 수월한 부류”이기에 데뷔를 준비하면서 무용에도 몰두했다. <충충충>에서 주민형은 입 밖으로 무언가를 발음하기 전에 이미 얼굴의 미세한 근육으로 다음 순간을 누설하곤 했다. 실로 그는 호흡으로, 움찔거리는 근육과 살갗으로 다가오는 배우다. <충충충>에서 보여준 어디로 튈지 모를 에너지는 주민형이 품은 동물적인 특질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배우가 히스 레저와 샤이아 러버프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 취향이 본능적으로 동족을 알아보는 감각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는 야심있지만 어디에나 능숙하게 적응하는 모범생은 아니다. 바로 그 점이 스크린 위에 뜬 얼핏 평범하고 묘하게 비범한 인상의 이 배우에게 긴장감을 부여한다.
“집에 돈이 좀 많았으면 했다. 돈 잘 버는 직업을 더듬다 배우를 떠올렸고, 글도 책도 멀리하던 내가 연기학원에서는 난생처음 희곡을 정독했다. 그래서 계속했다.” 그런데 신인배우란 세상에서 가장 돈 못 버는 직업이 아닌가. 주민형은 “그때 어린 마음에 잘못 생각한 나를 지금의 내가 잘 달래면서 데려간다”고 머쓱하게 웃는다. “괜찮다. 어차피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지내던 시절에도 ‘나는 스파이더맨이야’ 하고 믿으면서 버텼으니까.”(<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피터 파커는 뉴욕 조스피자에서 일한다.-편집자)
<충충충>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연기가 막히면 대본을 맨 뒤에서부터 거슬러 읽어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해석을 묻고 또 되물었다. 그렇게 인물의 근삿값에 도달하려 노력한 다음 마지막 순간에서야 “아무도 모르는 내 속마음 하나”를 밀어넣었다고 한다. 그 속마음이 뭐냐고 물으니 “욕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잘되고 싶은 욕망, 잘 살고 싶은 욕망이 1999년생 신인배우 주민형의 동력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다음 작품에서도 <충충충>만큼 자기다움을 아낌없이 소진하리라는 분명한 예감이 든다.
FILMOGRAPHY
영화
2025 <충충충>
2024 <최소한의 선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