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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 어둠 속에 성냥불을 켜는 질문
송경원 2026-02-27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와 함께 극장가에 훈풍이 불었다. 관객 700만명을 눈앞에 둔, 약간의 과장을 보태 1천만명도 가시권에 들어온 <왕사남>의 흥행을 두고 여러 평가와 분석이 쏟아진다. 대체로 끄덕여지지만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동안 극장이 한산했던 이유가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였다는 걸 이 영화로 확인했다’는 뼈아픈 평이다. 일리 있다. 다만 논점과 현상이 뒤섞여 있는 지적이라 몇 갈래 분리와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부분적인 사실이 옳다고 해서, 그걸 전체를 설명하는 근거로 삼아선 안된다. 주관적 감상을 객관적 지표로 삼기는 어렵지만 <왕사남>은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하나의 현상으로서의 숫자는 그 자체로 여러 긍정적 신호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것이 곧 작품 전체의 완성도와 수준으로 단순 치환되어선 곤란하다. 숱하게 증명된 바와 같이 흥행과 완성도가 반드시 (사실 거의 대부분) 일치하진 않는다. <왕사남>은 영리하다. 친숙한 소재의 변주, 익숙한 코미디, 적당한 볼거리, 마지막에 보장된 눈물까지 종합선물세트처럼 잘 구성된 이 영화는 종종 헐거운 장면과 느슨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다. 커다란 장점 하나가 사소한 흠을 덮어준다고 할까. 마음을 움직이는 대중영화라면 응당 갖춰야 할 미덕을(동시에 한계를) <왕사남>도 갖췄다.

여기서 굳이 장항준 감독의 연출력을 문제 삼는 건 소모적이다. 이미 숱한 지적이 나온 것처럼 감독의 연출력이라는 애매모호한 지표는 캐스팅부터 현장의 분위기까지를 다 아우르는 역량이다. 그보다 <왕사남>이 흥미로웠던 건 마지막 장면이 주는 절절함의 위력이다. 감정선의 축적이나 서사적 밀도와는 무관하게 홀로 떨어져도 심금을 울리는 이 장면의 에너지는 대부분 배우의 괴력에 가까운 연기로부터 비롯된다. 이 시점에 우리를 붙잡는 것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했냐는 논공행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건 한 장면이 전체를 지배(혹은 대체)할 수 있는지, 부분이 전체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마침 공교롭게도 <왕사남>과 정반대의 처지에 놓인 영화가 있다.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는 다소 아쉬운 성적과 몇몇 뼈아픈 평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완성도, 특히 장면의 기술적인 성취가 빼어난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또 한번 공교롭게 두 영화 모두 다소 오래된, 좋게 표현하면 예스러운 감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왕사남>이한 장면 (특히) 엔딩 덕분에 모든 결함이 덮인 반면 <휴민트>는 반대로 특정 장면의 불편함이 마치 돋보기가 된 듯 작품 전반에 대한 혹평으로 번져나갔다. 무난했지만 특출난 한 장면이 전체를 살린 영화와 조밀한 완성도에도 한 장면의 균열을 막지 못한 영화. 다시 한번, 무엇이 더 낫다는 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뇌리에 박힌 그 한 장면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논쟁의 장이 이어지길 희망한다. 반가운 흥행 덕분에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의 장이 마련됐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답이 넘치는 시대, 질문이 점점 귀해진다. 이 두편의 귀한 영화가, 어떤 장면들이 2026년의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마음속에 떠오르는 작은 생각의 조각들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침묵할 수 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각자의 고백이 불붙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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