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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려워하지 말고 그냥 하자”, <간첩사냥> 배우 민경진

배우 민경진은 데뷔 52년 만에 첫 주연 타이틀을 갖게 됐다.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그의 출연작은 모두 107편이다. 주로 비중이 적은 조연이었지만 출연작의 면면이 가히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절을 정통으로 가로지른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1993)를 시작으로 임권택, 장선우, 이창동, 강우석, 봉준호, 허진호, 나홍진 감독 등의 영화에서 이장, 식당 주인, 경비원, 아빠, 사무장, 브로커, 경찰 등으로 등장했다. 타고난 목소리가 선명해서 짧게 스쳐 지나가도, 심지어 문고리를 잡고 닫는 역할에 불과할지라도 관객의 기억에 각인되곤 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의 새로운 과정인 ‘장편랩’ 1기 작품인 <간첩사냥>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는 국가 수호를 부르짖으며 간첩을 잡겠다고 나선 노인 ‘장수’다. 숨은 사연이 많은 인물이다. <씨네21>과의 첫 인터뷰 자리에 나선 그에게 생애 첫 주연작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 <간첩사냥>의 캐릭터 관계 구도가 독특하다.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는 여자와 우연히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공조한다. 마냥 진지하거나 한없이 가볍게 풀기에 무거운 ‘간첩’이란 소재로 얽힌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이준혁 감독과는 영화의 톤 앤드 매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처음 감독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미 감동을 받았다. 장수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고. 시나리오를 읽는데 엔딩까지 쭉 재미나게 읽혔다. 만화책 읽듯이 단숨에 읽고 나서 분량이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바로 수정해서 반영도 해주더라. 그 소통이 쉬운 게 아닌 걸 잘 아니까. 이준혁 감독이 내 아들과 한살 차이인데 정서적으로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는지 느껴지더라. 언론 시사가 끝난 다음날 새벽에 장문의 문자를 보내 고맙다고 연락도 주더라.

-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어땠나.

처음엔 부끄러워서 내 연기를 잘 못 보겠더라. 과거에 성우할 때도 내 목소리가 어색해서 잘 못 듣곤 했다. 몇몇 부분에서 대사 톤이 어색한 게 느껴져서 후시녹음을 다시 하면 안되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앞으로 무대인사나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 나갈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창피하기도 한데, 지금 심정은 이 영화가 꼭 내가 낳은 자식 같다.

- 영화의 홍보 문구로도 활용되던데, 첫 주연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출연 분량도 다른 배우에 비해 많다.

전체가 17회차가량인데 13회차 정도를 찍었으니까. 촬영이 없을 때도 현장 나가서 후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20대 초반 배우 후배들이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까 옆에서 질투도 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연기했다. 처음 리딩할 때부터 다들 열의가 엄청났다.

- 나라를 위한다면서 간첩을 잡겠다는 장수는 민서와는 조금 다른 목적이 있다. 영화 내내 세대 차이를 강조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가족을 위한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다.

장수는 마음 깊은 곳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안고 사는 인물이다. 꼰대처럼 보일 때도 있는데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노인으로 그리고 싶었다. 후반에 민서와 맞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 한번 쳐다보면서 “얼씨구” 외치는데 그게 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장면 같아서 감독에게 직접 제안해 넣은 장면이다. 예전에 나이 많은 감독님과 일하던 현장에서는 상황만 던져주고 즉흥적으로 롱테이크 연기도 시키곤 했는데 그런 현장 분위기도 생각나서 좋았던 장면이다.

- 자료 조사를 하다 2024년에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오른 유튜브 클립 영상을 찾아보게 됐다. 관객의 성별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호응을 유도하고 즐겁게 해주는 에너지가 해학적이라 느꼈다.

대학생들의 단편영화 촬영부터 나를 찾는 곳은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한참 어린 영화인들과 어울리고 작업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반대로 어르신들과도 작업했으니까. 임권택 감독님과 바둑 두던 현장의 시절부터 움직임 자체가 한폭의 그림이었던 유현목 감독님의 촬영 현장, 하다 못해 첫 영화에서 유영길 촬영감독님의 호통도 겪어봤으니까. 그렇게 살아온 영향도 있지 않을까.

- 1974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후에 <오동동>으로 1995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고, 이창동 감독이 시나리오에 참여했던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스무살에 연극무대로 데뷔했는데 지금까지도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물론 선배들이 잘 끌어주긴 했지만 혼자 수련하다시피 연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979년에 MBC 분장실에서도 일해보고 EBS에서 2년 동안 성우도 해봤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마흔 즈음에 동아연극상을 받았는데 그제야 정체성이란 게 조금씩 보이더라. 당시 친구들은 팀장도 되고 누구는 대학교수도 되고 할 시기에 나는 이제야 배우가 되었구나 했다. 딱 그때 영화로 넘어오게 됐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다. 52년 연기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70년대에 연극으로 시작해서 그 멋진 감독님들과 한 시절을 잘 놀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 직접 갖고 다니는 명함에 ‘그냥배우’라는 각인을 만들어 찍었다. 이유가 있나.

자연스러운 배우가 되자는 뜻이다. 어린 친구들 중에서 연기를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심성으로 자연스럽게 잘하는 배우들이 있다. 오히려 성인이 돼 연기를 배우려고 할 때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고. 배우라는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 덧씌우는 노력 같은 건 가면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란, 다른 것 없이 그냥 배우다. 연기를 어려워하지 말고 그냥 하자, 라는 뜻에서 만들어 새겼다.

- 이제 개봉하면 관객 앞에 나설 일이 더 많아지겠다.

어떻게 하면 <간첩사냥>이 좀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정성을 쏟아야 하나? 혼자서도 계속 고민한다. ‘만약 종교가 있다면 기도를 한다든지 절을 한다든지 할 텐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연극도 하고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참에 담배를 끊어보자.’ 이렇게 마음먹고 이제 금연 열흘차가 되었다. 직접 보건소 찾아가서 패치 붙이고 바로 끊었다. 많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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