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모를 알레르기로 오랫동안 안과를 다니고 있다. 인터넷에서 본 ‘삶의 질 뚝뚝 떨어트리는 병’이란 글엔 안과질환이 3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1위와 2위에 해당하는 병도 앓고 있는 나로서는 3위 정도에 머물러주는 이 눈병이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렇게 자조하지 않아도 나는 안과에 가는 걸 언제나 좋아했다. 거기선 대부분의 사람이 울고 있지만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안과 대기실의 분위기만큼이나 울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노래가 좋다. 대부분의 K팝이 그렇지 않으냐고 되묻겠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울고 있는 사람은 양극화된 존재다. 모두를 원망하다 모두를 용서하고, 이유 없이 비장하다 속절없이 무너진다. 웃는 사람은 종종 앞에 선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지만, 우는 사람은 대체로 상대를 그 슬픔에 동화시킨다. 그 정동을 꿰뚫는 노래는 많지 않기에 나는 <NEVER>라는 노래를 매번 과대평가한다.
<NEVER>는 <프로듀스 101>시즌2의 경연곡이자 워너원 데뷔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펜타곤의 후이가 프로듀싱한 곡이다. 시청자 투표로 팀이 결정되는 미션에서 압도적인 반응을 받은 이 곡은 자연스럽게 데뷔가 유력한 상위권 멤버들로 구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투표 순위 1, 2위를 다투던 강다니엘이 SNS를 통해 특정 곡과의 매칭을 유도했다는 이유로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장 완성도 있는 곡, 가장 인기 있는 팀원으로 구성된 <NEVER> 무대는 당연하게도 최고점을 받았고, 한명을 제외한 팀 전원이 워너원으로 데뷔했으며, 음원 또한 뜨거운 반응을 받으면서 워너원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다.
서바이벌 과정에서 등장한 곡이 서바이벌의 결과로 탄생한 그룹에 환원되는 것에 불만은 없지만, 왠지 이 곡만큼은 미션 당시 결성된 팀인 ‘국민의 아들’ 것으로 불러야 내 안의 진정성이 해소될 것 같다. 아마 <프로듀스 101> 시즌2를 기다리면서 시청하고, 그 한편의 서바이벌이 만든 극심한 고통과 후유증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나의 이런 고집을 수긍해줄 것이라 믿는다(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아들이란 이름마저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 내내 수많은 곡이 등장했지만, 국민의 아들이 부른 <NEVER>만큼 이 방송의 정서를 대표할 수 있는 곡은 없었다. 목숨조차 아깝지 않을 사랑이었다고 목놓아 울다가도 머릿속에서 이제 제발 꺼지라고 절규하는 이 노래처럼 <프로듀스 101> 시즌2, 아니 <프로듀스 101>의 모든 시리즈는 팬들에게 광적인 사랑의 기억이자 다신 겪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만들었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루트로도 전편을 다시 볼 수 없다.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 명명하며 ‘공정성’을 앞세웠던 프로그램은 전 시즌에 걸친 제작진의 투표 조작이 드러나며 한국 방송 사상 최악의 서바이벌 쇼로 전락해 방송사 내의 ‘금지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절박한 연습생들의 꿈을 유린하고, 그들의 꿈을 응원한 팬들의 마음마저 농락한’ 제작진. 실컷 욕을 퍼부었다. 그러다 ‘그들의 꿈을 응원한 팬’이라는 글자를 궁리하듯 들여다봤다. 과연 내가 그들의 꿈을 응원한 적 있었던가.
난 정말 방송 자체가 가진 구조적 불공정성을 몰랐을까? ‘합격자의 화면 노출이 탈락자의 4배’라는 결과는 1회부터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노출 빈도가 합격 여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편집권을 통해 특정 연습생의 분량과 이미지를 독점하며 시청자의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나는 다 알고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가혹한 생존 경쟁의 자극을 포기할 수 없었다. 시스템의 결함은 ‘성공을 위해 네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시련’일 뿐이었다. 서바이벌의 논리를 체화한 팬덤은 기이하게 도약했다. 내 ‘원픽’의 노출 빈도가 순위와 직결된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스스로 홍보 콘텐츠를 생산하는 마케터로 상대를 견제하며 투표 수를 관리하는 전략가로 진화했다. 지하철 전광판을 사고, 사비를 털어 경품 이벤트를 열고, 타 연습생 팬덤과 연합하고, 물밑에서 인기 많은 연습생의 여론을 조작하며 오직 ‘내 새끼’의 데뷔를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언제 알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어 발버둥치는 나는 그 안에서 열정이나 헌신 따위의 단어를 붙잡는다. 그러나 여전히 <NEVER>를 국민의 아들 버전으로 듣는 나는 계속해서 분열한다. 불완전하고 절박한 서바이벌 쇼의 무대를 좋아했던 나, 그 연습생들의 무대만큼은 조작되지 않은 ‘진짜’라고 믿고 싶은 나, 워너원을 만든 이들에게 나의 죄책감을 모두 전가하고 싶은 나, 시간이 흘러 그들의 해체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며 남의 일처럼 거리를 두는 나. 모두가 울고 있는 풍경 속에서 냉소하는 나는 더 이상 이 노래의 슬픔에 잠식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더 큰 비탄에 빠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