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친근하게 여겨왔던 얼굴 뒤에 가려진 속내를, 배우 이희준은 한 차례 꺼내 보인 적이 있다. 첫 단편 연출작 <병훈의 하루>에서였다. 그가 연기한 청년 병훈은 공황장애로 분전 중이다. 오염 강박까지 있어 집 밖을 나서는 게 더 곤혹스러운 병훈은 담당 의사에게 치료를 위한 과제를 받는다. 그건 시내로 가서 옷 한벌을 사 입는 것. 일상이 버거운 병훈에게는 버스를 타는 것, 가게에 들어서는 것,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내미는 것 모두 엄청난 숙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고난을 물리치고서야 그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그제야 오늘이 생일임을 알아차린 병훈은 명동의 군중 틈으로 사라지면서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돈가스 먹을까?” 그러고도 한참을 걷다가 마지막 대사도 뱉는다. “지하철 타고 갈까?”
17분에 압축된 나들이가 병훈의 문제를 해결해줬을 리는 없다. 병훈이 식당 문을 만지지 못해 돈가스를 포기할 수도, 개찰구를 통과하지 못해 지하철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대신 영화는 인물 내부에서 조용히 명멸하고 있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병원에 도움을 구했을 과거의 그는 끝에 이르러 외식을 시도해보려는 그와 같은 사람이다. 또렷한 변화를 암시하기보다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에 쌓였던 먼지를 털어주는 것으로 엔딩을 장식한 이 영화는 감독 이희준의 다음을 기대하게 했다.
언젠가의 자신과 닮은 인물을 직접 쓰고, 표현하고, 세상 밖으로 놓아준 감독은 이 방법론을 두 번째 연출작에서도 고수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한 중편 <직사각형, 삼각형>은 그가 시야를 자신에게서 가족에게로 확장한 사례다. 영화에는 네쌍의 부부가 나온다. 조부모가 된 노부부, 그들의 세 남매가 각각 이룬 커플들은 막내 부부의 집에서 주말 저녁을 맞는다. 관객을 그 거실로 따라 들어가게 하는 인물은 둘째 딸 민정(정연)의 남편이자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배우 준호(진선규). 큼지막한 차량을 세워두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처가식구를 상대하는 그는 ‘연예인 사위’의 고충을 겪어봤다는 감독의 페르소나에 다름없다. 손위 처남의 난감한 부탁에 능청스럽게, 처제 윤정(권소현)의 갑작스러운 소란에 유쾌하게 대응하는 준호에게서 <여배우는 오늘도>(2017) 속 문소리의 다른 버전이 엿보이기까지 한다.
처가의 윤활유처럼 굴던 준호가 마침내 자기 목소리를 드높이는 건 제목의 도형들에 관한 통찰을 설파할 때다. 일과 돈 문제로 시끄럽던 가족이 가사 노동과 제사를 두고 남녀로 갈리자, 준호는 처제가 운영하는 경락마사지 숍의 전단지를 집어든다. ‘어느 각도에서도 완벽하게’라는 카피가 적힌 종이를 접어 삼각기둥을 만든 그는 직사각형으로 보이는 옆면, 삼각형으로 보이는 밑면을 들어 서로의 시각차를 설명한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지만 꿋꿋하게. 어떻게든 상황을 눙쳐보려고 애쓰는 인간 앞에서 카메라도 허공과 바닥을 오간다. 거나하게 취한 이들의 이야깃거리 또한 매미로, 젖꼭지로 이리저리 뻗어나간다.
영화는 우스꽝스러움과 안쓰러움 사이를 진동하는 준호에게 한방을 선사한다. 득도한 양 히죽이던 그에게서 웃음기를 앗아버릴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직사각형, 삼각형>은 그 난장에 온 가족을 동원하는 피날레로 화룡점정에 이른다. 가부장적 태도를 차마 못 버리는 남자들도, 그런 배우자를 비웃으며 옛 연인을 회상하는 여자들도, 가족을 위협하는 외부인에 맞설 때만큼은 한데 엉켜 편을 먹는다. “미국 가족 이야기였다면 결말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남자”의 반성과 바람을 품고 있다. 라스트신의 주인이 등장인물 중 가장 어린 여성인 손녀 은서(이하랑)라는 점도 그 자각과 연결된다. 홀로 옥상에 올라 삼각기둥에 뚫린 구멍 너머로 모든 광경을 바라보는 아이는 웃는다. 아니, 웃어버린다. 웃음으로써 어리석은 어른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처럼. 그건 감독 이희준이 짓고 싶은 미소와도 닮아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