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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꿈과 소명의 이름으로, <슈가> 최신춘 감독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6-01-22

최신춘 감독에게 첫 장편 <슈가>는 반드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1형당뇨병이 있는 그는 2019년,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의 기사를 접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글은 놀라움으로 이어졌다. 기사에는 1형당뇨병을 진단받은 아들과 같은 환자들을 위해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연속혈당측정기를 국내에 들여온 엄마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해당 과정에서 김 대표는 세관 미신고로 관세청에 고발되고,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법 위반 조사를 받았다. 기소유예 판결을 받은 뒤에도 1형당뇨인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기기 도입을 추진했고 그 노력은 건강보험 혜택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신춘 감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규모의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법학 전공자로서 제도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궁금했다. 주저 없이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네이버 카페(1형당뇨인과 가족의 모임 슈거트리)를 통해 김미영 대표에게 쪽지를 보냈고, 세 시간에 걸친 대화를 나눈 뒤 결심했다. “모두의 마음에 잠들어 있던 꿈과 소명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자.”

-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김미영 대표를 만났을 때 시나리오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졌나.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왜 타인을 도왔느냐는 것이었다. 자기 아이를 위해 측정기 한대를 들여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십대가 되면 보통 일이 아니게 된다. 타고나기를 착한 성품인 건지, 과거에 큰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건지 세세히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표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나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하셨는데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정확한 설명 없이도 알 것 같았다. 간절한 꿈이나 목표가 생겼을 때 신이 나를 그 일로 세상에 부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심적으로는 공감했으나 시나리오로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영화에서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고 그래야 투자자와 관객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

- 기획자로도 이름을 올린 김 대표와 계속 소통하면서 허구의 이유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겠다.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나.

미라(최지우)가 아들 동명(고동하)이 아기였을 때 트럭 토스트 가게 사장(김연진)에게 도움을 받는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남편(민진웅)마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아픈 동명을 안고 길 위에서 전전긍긍하던 미라는 사장의 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간다. 그런 선의의 기억이 주인공이 투사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 이 장면이 필요한지 대표님에게 설명하는 과정은 조심스러웠고 설득의 시간도 길었으나 연출자를 믿어주신 데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 1형당뇨의 인식 개선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지만 메시지 전달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메시지와 이야기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자기 검열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싶다.

1형당뇨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길 바란 건 대표님이었다. 단것을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이라거나 유전 때문이라는 편견이 영화가 가진 대중적 힘으로 벗겨지길 원하셨다. 나는 처음부터 정보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쪽이었다. 메시지가 강조되면 관객이 알게 되는 건 많아도 환자들의 고통을 체감하는 데까지는 도달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래서 동명이 가족이 어떤 일을 겪고, 그 과정에서 미라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 미라의 고난과 성취뿐 아니라 당사자인 동명이의 일상, 야구선수로서의 꿈도 병행해 그려냈다.

극 중 동명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쯤 되면 자기만의 세계와 고집이 생길 나이라 동명이에게도 독자적인 서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왕따 같은 클리셰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6학년 때 1형당뇨 판정을 받아서 그때의 감정과 이후에 겪게 될 일들을 잘 알고 있다. 사실 그렇게까지 불편하지 않은데 주변에서 과하게 걱정하는 상황에서 오는 부담감 같은 것들이다. 그런 미묘한 감정들을 담고 싶었다.

- 최지우 배우가 미라 역을 맡으면서 제작이 본격화됐을 것 같다. 어떻게 성사된 캐스팅인가.

미라 역할에는 잘 알려진 좋은 배우여야 한다는 기준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어서 캐스팅이 길어졌다. 그러다 다른 영화 작업으로 알게 된 YG엔터테인먼트 매니저에게 배우 추천을 부탁했고, 그제야 YG 홈페이지에서 소속 배우들을 살펴봤다. 그때 최지우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옳다구나 싶어 시나리오를 전달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직접 만날 수 있었다. 2023년 12월 청담동의 한 카페, 잊을 수가 없다. (웃음) 그날 지우 선배가 <에린 브로코비치>를 좋아하데 <슈가>가 그런 작품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실화도 찾아보면서 느낀 바도 많았다고 했고. 미팅 다음날 바로 해보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제야 실제적인 제작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 마트에서 미라는 동명이가 어디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아이를 찾아 헤맨다. 이 장면의 연기와 연출이 인상 깊었다.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미라를 카메라가 풀숏으로 지켜보는데 편안한 마트 분위기와 대비된다. 보면서 미라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도 홀로 마음을 졸이고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게 됐다.

회심의 장면이다. 마트 로고송도 따로 만들어넣었다. 촬영을 길게 했는데 카메라 위치와 연출 방향은 현장 막바지에 결정됐다. 그런 이상한 신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날 설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 오직 미라만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모습이 1형당뇨 아이를 둔 가족의 일상이라는 걸 임팩트 있게 보여주고 싶어서 편집실에서도 공들 들였다.

- 환우회 카페 회원들도 직접 영화에 출연했다고. 미라가 혈당측정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세미나 신과 식약처 앞 단체 시위 장면이었는데, 현장 분위기가 각별했겠다.

다들 상황을 잘 아시니까 설명할 필요가 없어 연출자가 편했다. (웃음) 서로 유대가 있어 현장이 안정적이었고 웃음도 많았다. 식약처 수사관으로 출연한 김선영 배우가 시위 장면을 지켜보며 감동이었다고도 했는데, 솔직히 이분들이 없었다면 영화가 비어 보였을 거다. 지금 누구보다 영화를 궁금해하셔서 환우회 가족 시사회도 마련했다.

- <슈가>를 위해 제작사 호랑이기운을 차렸다. 앞으로 어떤 에너지 넘치는 작업할지 기대된다.

여러 가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 두편과 드라마 대본 한편이 있고 새로 또 하나를 써야 한다.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건 저예산 로맨틱코미디영화로 현재 투자사를 찾고 있다. 이 와중에 사고 싶은 원작도 있다. 이중 하나라도 잘 풀리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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