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재현은 ‘좌빠+자빠’다>라는 글을 다시 찾아 읽었다. 2005년 세밑 <한겨레>에 실린 문화비평가 이재현의 새해맞이 에세이다. 여기서 그는 장구 익히기와 영어 공부를 다짐한다.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맘을 먹으면 신이 나서 뇌에서 엔돌핀, 즉 마약이 마구 분비되는 것이다.” 그는 사석에서도 곧잘 늦깎이 공부가 즐겁다 했다. 요즘 내가 그렇다. 2025년 국가기술자격증(2급)을 두개 땄다. 그런다고 당장 뭐가 되진 않지만, 재미가 컸다. 공부라면 학을 뗐던 내가 말이다. 직업상담사 시험장에는 50대들도 여럿이었다. 사회조사분석사 시험장에선 나 빼고 다 2030이었다. 중간자와 최고령자를 오가며 인생의 묘미를 곱씹었다. 시험장인 신도중학교 3학년 1반의 급훈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그래, 문돌이인 내가 통계수학과 통계분석 프로그램까지 학습한 것도 즐거워서였지.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다. 삶은 기적인가. 다만 나이 먹으니 착잡한 일도 있다. 지난 한해, 유명인 말고 가장 욕먹은 존재는 ‘영 포티’다. 특히 나 같은 1980년대 초반생이 과녁이었을 테다. 내가 아는 사정은 이렇다. IMF 사태로 취업난을 맞은 X세대가 ‘급락 세대’라면, 부모 세대의 침체를 함께한 내 또래는 저점에 눌린 세대였다. 2000년대 중반엔 ‘사상 가장 보수적인 청년’으로 지목됐다. 문화든 정치든 선도나 주도를 해본 적이 없다. 나이 들어서도 눌림목이었다. 1982년 한국 사회 중위 연령은 약 22살이었다. 1982년생이 청소년일 때는 서른 즈음이 딱 중간이었다. 하나 자신은 쉰이 되어야 중위연령에 이른다. ‘영 포티’로서 욕을 먹는 건 바로, 그렇게 눌렸다 근래 중견층으로 접어들고 있는, 그중에서도 재력과 지위를 확보하기 시작한 이들이다. 여유가 생겼답시고 청년의 젊음과 중년의 권위를 동시에 탐낸 귀결이다(이 반대 사례로는 소기업 블루칼라인 1984년생 유튜버 ‘퇴근남유경우’가 있다). 낀 세대에게 필요한 건 ‘양손의 떡’이 아니라, “매순간 출렁거리지만 두 세대를 이어준다는 자부심”(이재현)이 아닐까. 마침 2025년에는 귀감이 되어준 사람들도 있었다. 1990년대를 풍미한 록밴드 지니·이브·닥터코어911이 MBC <쇼! 음악중심>에서 귀환을 알렸다. 아이돌에게 안 밀리는 엔딩 포즈도 나왔다. 지난 8월 나는 시험친 이튿날 지니 콘서트에 갔다. 이 밴드가 활동하던 시절 나는 비수도권 중소도시의 중학생이었다. 전곡을 외우기도 했지만 라이브는 처음이었다. 역시 오래 살아야 한다. 그날, “오늘만은 내 맘대로 살아갈 거야”(<바른 생활>)를 불러대던 소년과,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해가고 있어요. 마치 큰 수레바퀴를 밀고 가는 것처럼”(<울고 있는 작은 영혼을 위해>)을 읊조리는 장년은 하나였다. 멀어진 젊음을 향한 미련이나 어른 대접 받으려는 욕심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오래 들어온 노래들을 크게 듣고 크게 부를 때, 나는 그저 내 길로 흘러왔고 흘러갈 뿐이라는 것을 느낀다. 새해에도 계속 열심히 공부하고 음악도 반드시 공연장에서 크게 들을 것이다. “세계는 나를 바꾸지도 못하고 심지어 세계는 나를 해석하지도 못한다. 내쪽이야말로 흐르는 강이므로 세계는 같은 나를 두번 건널 수 없다.”(이재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