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기획] 가장 먼저, 가장 최고로, 가장 낮은 곳으로, 함께하는 사랑밭이지구촌을 연결하는 방식
이자연 2025-11-27

1986년 유독 추웠던 겨울. 충무로 육교 위에서 화상을 입은 엄마와 두 아이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때 그들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민 건 권태일 목사였다. 그리고 이날의 작은 연결은 비영리단체 함께하는 사랑밭의 단초가 되었다. 작은 관심만으로 주변 이웃이, 우리의 마음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견고해진 순간이다. ‘가장 먼저, 가장 최고로, 가장 낮은 곳으로.’ 함께하는 사랑밭의 미션 문장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으로 가장 먼저 향하겠다는 중심 이념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로서 함께하는 사랑밭이 수행하는 지원사업은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 지적·문화적 욕구 충족, 아동복지 재정립 등 다양한 방향으로 복지사각지대를 꼼꼼히 정비한다. 2018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특별 협의지위를 부여받은 이후 국제적 NGO로 자리매김한 함께하는 사랑밭은 도움과 지원의 범위를 국제적 단위로 넓히며 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고민했다. 그렇다면 이 발자취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세상은 어떤 시간이 모여 변화할까. 함께하는 사랑밭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묵묵히 진행해왔다.

콜롬비아 라과히라에서 시작된 자립, 자유, 존엄성

콜롬비아 북부의 끝, 베네수엘라 국경과 맞닿은 땅 라과히라. 이곳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건조지역 중 하나로 한낮의 온도가 40도를 훌쩍 넘는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와유족 여성들의 손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형형색색의 실을 꼬고, 문양을 맞추며, 전통 가방 모칠라를 짜내려간다. 그들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칠라는 한국에서도 10만원이 넘는 고부가가치 수공예품으로 판매되지만, 정작 제작자에게 돌아가는 돈은 가방 한개당 5천원 남짓. 한달 수입은 4만원을 채 넘기지 못한다. 이처럼 기술은 정교하지만 구조는 불공정하다. 함께하는 사랑밭은 바로 그 부조리한 고리를 끊고자 했다.

처음 마주한 과제는 품질 문제였다. 와유족 여성들의 모칠라 제작 기술은 오랜 세월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어머니에게서 자녀로 전승되어왔다. 그러나 체계적인 교육이나 품질 표준이 부재해 기술 수준이 낮았으며, 이로 인해 여성들이 만든 모칠라는 중개상에게 헐값에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도 정당한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하는 사랑밭은 콜롬비아 국립직업훈련원(SENA) 소속의 모칠라 제작 전문 장인을 초청해 마을 내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여성들이 안정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와유족 여성들은 수공예품 제작에 있어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작은 변화는 기술 향상의 첫걸음이 되었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배운 기술을 지속 가능한 생산으로 연결하려면 그 기술이 발현될 수 있는 물리적 공간, 즉 작업환경이 필요했고 유통구조 개선도 해결되어야 했다. 이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하는 사랑밭이 세운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여성들은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동작업장을 마련하고, 전기가 닿지 않는 마을에는 태양광 설비를 설치했다. 어두워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공동구매를 통해 원료비와 운송비를 줄이고, 협업과 분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생산량도 늘어났다. 아이를 둔 여성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보육공간도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공동 제작할 경우, 생산량 증가에 따라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게 된다. 또한 조합 자체적으로 패키지를 내놓을 수 있으며 가방마다 어떤 직공이 만들었는지를 알리는 ‘책임판매제’도 실현할 수 있으며 효과적인 재정 운영도 할 수 있다.

상품성을 높일 소프트웨어(기술)와 하드웨어(공간)가 마련되자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듯 보였다. 그러나 함께하는 사랑밭이 기대하는 것은 소득 증가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에 와유족 여성들이 경제적 자립을 넘어 자존감과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인식 개선에 나섰다. 경제 교육을 통해 돈을 쓰는 법보다 ‘돈을 계획하는 법’을 배웠다. 위생 교육과 젠더 교육, 인권 교육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인식하고 사회적 활동을 확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들의 손끝에서 짜인 모칠라는 이제 생계를 넘어 존엄과 자립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하나의 마을이 온전히 자립 공동체로 자리 잡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운영, 기술교육의 확대, 그리고 여성 역량 강화 교육은 조금씩 지역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교육을 통해 화폐의 가치와 저축의 중요성을 배우면 수익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자원이 된다. 또한 성인지와 위생, 인권 교육을 병행함으로써 여성들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회적 인식을 넓혀갈 수 있다.” 함께하는 사랑밭은 이 과정을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와유족 여성들이 안정적인 소득 기반과 사회적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이외에도 함께하는 사랑밭은 지역사회 주도 개발(CLD)을 기반으로 교육, 보건, 식수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합한 지역사회의 자립을 지원 중이며 학대나 착취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보호하는 아동청소년 보호사업, 학교 운영과 양질의 교육을 지원하는 아동 청소년 교육사업, 깨끗한 식수 공급과 위생 시설 개선 등을 진행하고 있다.

화상의 회복은 마음까지-화상을 경험한 예술가의 회복 일기

화상은 피부에서 시작되지만 그 상처는 마음에 더 오래 남는다. 흉터와 구축이 남긴 신체적 불편, 사고 직후의 상실감과 분노, 퇴원 이후에도 이어지는 불면과 불안. 화상 환자를 위한 치료는 신체 회복에 그칠 수 없다. 함께하는 사랑밭은 화상 환자 본인과 더불어 가족과 보호자의 마음 회복을 돕는 화상 환자 심리정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화상 환자들은 어떻게 정서적 회복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2023년 5월, 민화 작업실 오픈 행사날 직접 만든 한지 의상을 입고 춤을 추던 김혜경 예술가의 옷자락에 불이 붙었다.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번졌다. 가슴과 배, 등, 양팔, 엉덩이까지 신체의 절반에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위기는 상처가 아물 무렵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정교한 동작이 어려워지며 무용 입시 지도가 불가능했고 해외 초청 일정도 모두 취소되었다. 모든 생계가 끊겼다. 그렇게 김혜경씨는 함께하는 사랑밭의 화상 환자 심리정서 지원사업을 지원받기 시작했다. 정기적인 상담은 그를 일상으로 조금씩 돌려놓았다. 연락이 끊겼던 가족을 만나고, 호흡을 되찾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생애 의지를 회복한 후 최근 카페를 개업한 김혜경씨는 공간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냈다.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더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상담을 하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한 발짝을 내딛자 좋은 일들이 따라왔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술가 김혜경은 화상 환자 심리정서 지원사업을 통해 신체적 치료 이후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를 돌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함께하는 사랑밭은 화상·희귀난치 치료지원사업을 통해 치료가 시급한 아동과 가정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진단으로 치료비가 급증한 가정에 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해 최소한의 치료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사업이다. 화상과 희귀난치 질환은 회복 기간이 길고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 실질적 도움이 큰 편이다. 이외에도 함께하는 사랑밭은 교육 환경과 학습 콘텐츠를 지원하는 아동 교육기회 지원사업, 고립 청년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고립청년 관계 증진사업, 재난·재해 등에 처한 가정에 실질적 회복과 복구를 지원하는 긴급재난회복 지원사업, 한부모가정 두드림 프로젝트, 이동플랫폼 노동자 지원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 함께하는 사랑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