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감각 <나답게 살고 싶어>
여수지, 민해월, 배현선 배우가 대표로 나선 청년 극단 감각은 젊은 세대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슈로 작품 활동을 해온 만큼 ‘느린 학습자’에 관한 이야기를 건넸다. <나답게 살고 싶어>라는 당찬 제목으로 경계성 지능 장애를 가진 아동과 그 주변인들의 일상을 표현한 것이다. 제2회 연극제 주제가 ‘비교’였던 만큼 “모두가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사회에서 느린 학습자들도 상처받지 않고 어울릴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꺼내고 싶었다는 극단 감각은 그 의도를 세심하게 드러낸 극으로 작품상과 여자연기상(여수지)을 품에 안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경계성 지능 장애로 혼란을 겪는 청소년과 그 부모의 고민을 묘사하며 시청자와 문제의식을 나눴듯 극단 감각이 제안하는 ‘나답게 살기’의 메시지도 객석에 고스란히 와닿았다.
느릅나무의 춤 <루트>
연출 한장현, 배우 김태인·김민우, 무대감독 박유민으로 구성된 극단 느릅나무의 춤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룹명부터 짚어야 한다. 엘름 댄스(Elm Dance)라고도 불리는 ‘느릅나무의 춤’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느릅나무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인공 구름 조성에 활용된 것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으로, 재앙에 맞서 평화를 기원하는 행위를 상징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연극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겠다는 모토를 품은 극단 느릅나무의 춤은 <루트>로 ‘나’라는 뿌리를 논했다. 개인의 개념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타인의 판단과 평가 없이는 자신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느릅나무의 춤은 이러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탐색하며 “나는 비교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열연을 펼친 김태인 배우는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양생컴퍼니 <결혼심사>
유건우 연출과 민승아, 이호민, 정택민 배우가 합을 맞춘 양생컴퍼니는 제목부터 흥미로운 극을 창작했다. 바로 <결혼심사>. 이 작품은 정부가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결혼 심사 제도를 시행한다는 상상력을 펼쳤다. 주인공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은 예비부부 현우와 수린. 두 사람은 심사를 통과하면 받을 수 있는 재정적 혜택을 기대하며 열심히 결혼 심사 면접에 대비한다. 물론 양생컴퍼니의 관심사는 혼인에 필요한 물리적 자격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연극은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연인 사이에서 빚어지는 진정한 행복의 모양을 탐색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해 정진하겠다”라는 창단 목적에 걸맞은 무대로 큰 박수를 받은 양생컴퍼니는 ‘결혼 심사’를 넘어 ‘결혼 재판’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상도 해봤다고.
스테이지블룸 <드라이브 아웃 D(r)ive out>
라이프 가드 티셔츠를 입은 남자와 여자. 스테이지블룸이 <드라이브 아웃 D(r)ive out>을 위해 무대에 갖춘 형상은 단출해 보인다. 하지만 윤지환, 이채린 배우가 들려준 스토리는 복잡다단했다. 그들이 관객을 데려간 장소는 한 시립 스포츠 센터의 수영장. 윤지환 배우가 연기한 연수는 계약직 안전요원이고, 이채린 배우가 연기한 기은은 ‘진상 민원인’으로 불리곤 하는 주민이다. 연수는 실적을 잘 쌓아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무사고 수영장을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곧 그의 미션인 셈이다. 그런 연수의 속도 모르고 기은은 출입 금지 구역인 다이빙대를 몰래 드나든다. 이 연극은 두 사람의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편견과 그로부터 비롯된 공격성의 위험을 드러냈다. 이 연극은 “꽃처럼 피워낸 예술로 삶을 위로하겠다”라는 스테이지블룸의 진심을 대변한 듯하다.
LavArte <요즘것들>
연출 안승수, 음악감독 조아라, 배우 유지윤·정연우·서해우가 모인 극단 LavArte는 애벌레를 뜻하는 낱말(larva)에 예술(arte)을 붙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까지 배우들의 성장을 돕겠다는 의미다. “아직 애벌레와 같지만 언젠가 나비가 되어 세상을 날 수 있도록 꾸준히 창작극과 라이선스 공연, 연극과 뮤지컬로 관객을 만나겠다”라고 다짐한 그들은 안톤 체호프의 단막극 <곰>을 재해석한 작품 <요즘것들>을 완성했다. 돈과 사랑이 얽힌 이 짧은 희극은 관계 안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비교라는 테마를 청년세대의 연애담으로 풀어냈다. <곰>과 달리 <요즘것들>은 음악극이기도 하다. 배가현 작곡가가 참여해 소리도 풍성히 채웠다.
청춘터 <그 해 봄>
제2회 소시오드라마 연극제에는 경연에 참가한 팀 외에도 찬조 공연을 선사한 두팀이 있다. 청춘터와 인연극단이 그들이다. 우선 청춘터는 선언했다. “만 19살에서 39살로 제한된 청년의 나이와 달리 청춘의 나이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나이는 물론 성별, 국적, 직업 등에 구애받지 않고 공연하고 싶은 이들이 협업하는 청춘터는 연극제에서 <그 해 봄>을 노래했다. 그들은 예술 노동 환경에서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균형을 뮤지션 그룹을 통해 역설했다. 회사 대표는 음반 판매를 위해 이미 녹음한 곡을 특정 멤버 중심으로 재녹음하라고 요구한다. 리더는 팀을 떠나려 하고, 둘째는 회사와 멤버들 사이를 조율해보는 와중에 막내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 사람은 팀을 지키면서 노동자이자 음악가로서도 대우받을 수 있을까? 강현준 배우 겸 연출의 지휘 아래 최창원, 정우진, 김명선, 김은진 배우가 물음표를 던졌다.
인연극단 <한여름, 방 안에 널브러진 쓰레기 속에서 곰팡이가 생명력을 지닌 채 자라난다>
박세영 감독의 첫 장편영화 <다섯 번째 흉추>의 장면들을 기억하는 이에게 인연극단이 제2회 소시오드라마 연극제에서 올린 극의 제목은 어쩐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 제목은 다름 아닌 <한여름, 방 안에 널브러진 쓰레기 속에서 곰팡이가 생명력을 지닌 채 자라난다>이다. 손희범, 임수한 연출을 포함해 임진택, 홍주명 배우가 공동 창작한 이 작품은 “장르 구분 없이 열정적인 예술 작업을 한다”는 인연극단의 소개 멘트에 걸맞은 시각적 충격을 선사했다. 회담장 혹은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서 퍼포머들은 공통의 메시지를 맨몸으로 구현했다. 인연극단은 실제 사연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장애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누구나 언젠가 어떠한 형태의 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말하며 관객이 ‘장애’라는 키워드 앞에 겸허해질 것을 요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