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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연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공론장의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김주영,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
문주화(영화평론가) 사진 최성열 2025-11-27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인 <종이 울리는 순간>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담보로 삼았던 가리왕산의 파괴된 생태계를 다루는 영화다. 3일간 열렸던 알파인 경기장을 건설하기 위해 10만7천여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갔다. 환호성이 끝난 자리에는 적자로 운영되는 케이블카가 남았다. 자연은 누구의 것인가? 가리왕산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김주영,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함께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가리왕산의 오래된 주인인 동물과 식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개별적인 환경문제의 담론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복잡한 구조 전반을 대화로 재구성하는 작품이다.

코메일 소헤일리, 김주영 (왼쪽부터).

- 가리왕산이 처한 상황은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그리고 이를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김주영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던 중편 <7개의 관문>을 본 (사)산과자연의친구측에서 같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주었다. 2011년부터 가리왕산을 관찰해오고 있는 단체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코메일 소헤일리 우리는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현재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는 환경이 아닌가. 가리왕산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될수록, 영화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 영화의 태도에 대해 묻고 싶다. 하나의 결론으로 나아가기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들으려 한다고 느껴졌는데.

코메일 소헤일리 실제로 우리의 연출 의도가 그랬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대개 한쪽 진영이 악당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종이 울리는 순간>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각자 솔직하고 진중한 태도로 출연에 임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다.

-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가, 지역민, 그리고 산림청 등이 주장하는 여러 가치들을 확인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영화가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주영 처음 영화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가리왕산의 복원에 주로 초점을 맞췄었다. 케이블카를 없애보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주민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올림픽이 파괴한 것은 비단 환경만이 아니라 그들이 몸담고 있던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코메일 소헤일리 국가적인 메가 이벤트인 올림픽이 가지고 있는 구조에 대해 알아가게 된 것 같다. 왜 우리 사회는 계속하여 이런 구조 속에 갇혀 있는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IOC의 문을 여러 번 두드렸지만 영화에서도 공개한 이메일 한통 외에는 그 어떤 답도 듣지 못 했다.

- 사람들이 내는 다양한 의견과 함께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자연과 동물의 모습을 비춘다. 평등한 시선과 숏의 균등한 분배가 이 영화가 가진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주영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었고, 잘 반영된 것 같아 기쁘다. 윤여창 교수님과 산에 가면 우리가 몰랐던 숲의 생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다. 한 예로, 한상훈 박사님은 “이곳에 멧돼지가 20분 전에 다녀갔다” 하는 것까지도 알려주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느낀 건 이 숲의 주인은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코메일 소헤일리 흔히 자연은 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단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고 있을 뿐이다. 자연이 내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인터뷰 대상자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이들의 증언은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메일 소헤일리 올림픽이라는 구조 속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노력했다. 올림픽은 정치적인 목적도 있다. 2018년은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국면에 있을 때였다. 그 과정에서 북한 전문가와 올림픽 전문가도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이탈리아의 이야기도 담게 되었다. 이 올림픽을 허가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실제로 운영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섭외하고 싶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문화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종교인들 역시 영화에 포함했다.

- 영화의 처음과 후반부에 동일한 숏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대립하는 장면이다. 관객은 처음에는 관조의 시선을, 나중에는 그게 무엇이든 어떠한 태도를 가지게 된다. 결국 영화가 만든 대화에 참여하게 되는 구조다.

김주영 그날은 케이블카 시험 운행 첫날이었다. 케이블카 운영측과 환경단체간 대치가 있었다. 처음 그 장면을 보면 단순한 싸움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 정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장면을 다시 접하면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코메일 소헤일리 한편으로 <종이 울리는 순간>은 천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는 플래시백이기도 하다. 천년 전의 가리왕산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26 동계올림픽을 앞둔 이탈리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코메일 소헤일리 과거 올림픽 개최지들도 비슷한 일을 겪어왔다는 것을 조사를 통해 알았다. IOC가 최근 들어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미래의 올림픽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탈리아 사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약속과 파기로 이어지는 패턴은 반복되고 있었다.

김주영 종소리를 의도적으로 연출했는데, ‘밀라노-코르티나’ 개최지 선정 장면에서는 절망적인 느낌을 의도적으로 주고 싶었다. 또 다른 산의 파괴를 선고하는 것처럼.

- 영화를 찍으면서 겪은 인식 변화가 있다면.

김주영 조금 이상한 대답일 수도 있는데, 개발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도 잘 들을 수 있게 됐다.

코메일 소헤일리 영화는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우리에겐 여전히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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