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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네가 있는 시간에서 죽어갈 거야, < OHAYO MY NIGHT >
복길(칼럼니스트) 2025-11-27

< OHAYO MY NIGHT > (디핵X파테코, 2020)

절망 속에서도 품위를 지킬 수 있을까? 임진왜란에서 팔을 다친 왕실 화가가 검은 비단에 금으로 그린 댓잎들을 보며 생각했다. 앞서 걷던 남자는 “이게 군자의 기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하며 감탄했지만, 달빛 같은 조명과 서늘한 댓바람 소리에 둘러싸인 이정의 <묵죽도>엔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함이 서려 있었다. 미술관 로비의 탁 트인 풍경을 보며 혼자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이미 무겁게 가라앉은 기분을 되돌릴 순 없었다. 상설 전시 관람을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가려던 그때, 광장에서 뛰놀던 한 아이의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앙! 기모링! 앙! 기모링! 앙! 앙! 앙! 앙!” 지사들의 삼청을 기리는 자리에 그보다 더 불경한 외침이 또 있을까. 농담 같은 풍경에 모두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이는 근심 하나 없는 행복한 얼굴로 보호자의 추격을 따돌렸다. 그래, 여기까지가 전시겠구나. 어쩌면 품위란 고독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두가 품위에 대한 문제를 갖고 있다. 나의 경우엔 ‘아줌마, 언제까지 K팝 판에 기웃거릴 건가요’라는 질문(실제로 SNS에서 받은 멘션)이 그 문제에 포함된다. 20대 중후반인 아이돌 멤버에게도 ‘이모’라는 별칭이 붙는 ‘판’에서, 30대인 나는 확실히 사원 회식에 끼어든 눈치 없는 부장이다. 사람들은 ‘품위 없는 것’을 볼 때 화를 내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헛웃음을 짓는다. ‘품위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순 없지만,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볼 때 느끼는 즉각적인 당혹감을 우리는 종종 수치심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를 향한 어린 K팝 팬의 충고는 ‘수치심을 가지라’로 일축할 수 있다.

꽤 무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리 있는 충고였다. ‘틱톡’이 메이저 SNS로 자리 잡을 무렵, 나는 그들의 챌린지 영상을 보면서 수치심이야말로 젊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연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율동, 오직 클라이맥스만 반복하는 내용 모를 연기, 아주 긴 윙크와 기계적인 교태…. 스와이프를 할 때마다 커지는 수치심은 ‘숏폼 때문에 세상이 망한다’는 섣부른 걱정에 공감 버튼을 누르게 했다.

디핵의 <OHAYO MY NIGHT>는 그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노래였다. 어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가족이 되어주라, 내 집이 되어주라, 나도 날 줄 테니, 너도 널 주라”고 고백하는 영상은, 그 노랫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율동과 함께 역병처럼 지독하게 퍼져나갔다. “내 아(이)를 낳아도”라는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기억하는 나, 눈치 없는 부장은 한동안 이 노래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특정 종교단체의 술수는 아닌지 의심도 했다. 하지만 그 의심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밤낮으로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옮긴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바로 전도사였던 것이다.

시간이 더 흘렀을 때 <OHAYO MY NIGHT>라는 역병은 사람들은 모두 좀비로 만들었다. ‘오글거림’, ‘공감성 수치’를 표하던 여론은 잦아들고, 어느새 각자의 최애를 향해 ‘가족이 되어주라! 내 집이 되어주라!’는 고백을 절절히 외쳤다. ‘다이소에서 우연히 듣고 미친 듯이 찾아다닌 노래’, ‘챌린지에 쓰인 부분은 별론데 노래 전체를 듣고 전율했다’, ‘가사가 찌질해서 좋다, 사랑은 원래 찌질하니까’…. 뮤직비디오 영상 아래 적힌 좀비들의 때늦은 감상처럼 <OHAYO MY NIGHT>는 끝내 인기가요 1위 후보, 유튜브 조회수 1억회, 멜론 연간 차트 41위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명곡’의 반열에 스스로 오르고 말았다.

‘날 놓을 거면 과거에 놔주라, 네가 있는 시간에서 죽어갈 거야’ 같은 무모한 다짐이 클라이맥스가 아닌 도입부에서 태연하게 등장하는 이 노래의 미학은 ‘상스러움’이다. 노래의 화자는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말로 상대의 사랑을 갈구하고, 쉽게 영원과 우주를 말하며,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미래를 기약한다. 이 노래처럼 얕고, 빠르고, 가벼운 것엔 수치심이 스며 있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경계하며 품위를 학습한다.

하지만 품위는 수치심과 교환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수치심을 느끼기 위해 K팝을 듣는다. 수치심은 K팝을 움직이는 동력이며 K팝 팬덤의 문화는 그것을 경계하고, 수긍하고, 극복하며 탄생한 수치심의 장르다. K팝을 듣는다는 건, 사소한 감정싸움에 몰두하다 불현듯 개인의 존엄을 생각하는 일이며, 누군가를 조건 없이 응원하다 갑자기 그 응원의 대가를 계산하게 되는 일이다.

나를 향한 어린 K팝 팬의 충고는 아마도 그런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 ‘나잇값’을 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안정과 성숙을 추구하며 다음 세대의 모델이 되는 일이기에 그 말은 충분히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다만 나는 품위란 ‘탈-K팝’ 선언을 통한 인위적인 단절이 아닌, 내가 몰두했던 감정을 다시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태도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품위는 수치심과 교환할 수 있는 고상한 전리품이 아니고 자기모순, 고통, 절망과 같은 다양한 수치심으로 이루어진 겸허한 태도다. 이 판에 남은 ‘눈치 없는 부장’들은 지난 얕고, 빠르고, 가벼운 감정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사랑한 ‘깊이 없는 것’의 가치와 성찰을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기억하시길, 이건 어디까지나 ‘너는 빠져’란 말에 ‘긁힌’ 나 같은 아줌마에게 해당하는 얘기라는 것을. 그런 말들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기개와 품위를 갖고 태어난 군자가 틀림없으니, 부디 등불처럼 당당히 걸어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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