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는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지나온 시간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 “이번 생에서 우리의 만남은 지금이 마지막이겠지만, 그렇기에 헤어지기 전에 말할게. 내 많은 부분이 너로부터 이루어져 있어.” 이야기의 절정을 앞둔 두 친구는 작별의 슬픔 앞에서 서로가 남긴 자국을 들여다본다. 뮤지컬 <위키드>2막에 해당하는 <위키드: 포 굿>은 외로웠던 엘파바(신시아 이리보)의 삶과 동물 탄압에 맞서 싸우는 운동가로서의 정체성, 마법사로 인정받고 싶은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의 욕망과 피예로(조너선 베일리)를 향한 사랑 등을 서정적인 방식으로 직면해나간다. 어떤 슬픔도 함부로 지연시키지 않는 세계관을 들여다보기 위해 존 추 감독에게 대화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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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파바가 마법 학교를 떠난 2막은 원작 뮤지컬에서 다소 어둡고 무겁게 그려진다. <위키드: 포 굿>에서 그 균형을 어떻게 설정하고자 했나.
엘파바와 글린다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여기서부터 두 친구는 인생에서 중요한 ‘진짜 선택’을 해야만 하고 모든 게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건 내가 <위키드>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위키드>파트1에서 우리가 구축한 모든 엔터테인먼트, 사랑의 연결고리, 꿈과 희망이 파트2에서 산산조각 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파트1에 쌓아놓은 것들에 충실하려 했다. 전작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이리보의 연기에 눈이 갔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글린다와 엘파바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의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이들의 복잡한 감정이 영화를 하나의 경험의 터전으로 만든다.
- 예고편으로도 등장했던 엘파바와 글린다의 육탄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뮤지컬 버전보다 두 친구의 갈등이 훨씬 더 커진 느낌인데, 영화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갈등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일까.
<위키드>는 두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이야기. 두 친구는 세상의 선함을 갈망하고 그것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거기에 다다르는 방식은 다르다. 엘파바는 동물을 억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짓밟는 체제에 맞서 싸운다. 동시에 그는 악당이자 마녀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글린다는 체제 안에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진화시키고 시간에 따른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다른 두 철학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조금 사악하고 조금 선하지만, 각자의 선택이 이룬 평균이 우리의 세상이 된다. <위키드>는 그런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선택의 평균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가? 세상의 진실을 마주했을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게 <위키드: 포 굿>의 중심이다.
- 존 추 감독은 어떤가. 어디에 더 가까운 편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엘파바 같은 사람이고 싶다. 세상에 맞서 싸우는 투지와 용기. 나는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린다에 가깝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린다의 삶이 용기 없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스스로 거품을 꺼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글린다는 결국 어둠 속으로 자신의 발을 들여놓는다. 늘 긍정적인 글린다에겐 정말 무서운 일이다.
- <위키드: 포 굿>은 <오즈의 마법사>이야기가 들어서면서, 다시 말해 토네이도를 타고 날아온 도로시가 등장하면서 방향이 급격히 바뀐다.
일종의 두 세계간의 충돌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고 자란 이야기와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가 맞부딪히는 것이다. 토네이도와 무너진 집, 겁쟁이 사자와 깡통 나무꾼 같은 상징적 요소들이 또 다른 세계관에 녹아들고, 우리와 새로이 친해진 엘파바와 글린다가 이 요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려내야만 했다. 그러니까 상상 속 세계관이 하나로 통합되는 느낌이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서글픈 이야기에 도로시의 순수함과 젊음이 녹아든다는 게 얼마나 멋진가. 영화는 동화보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가 깝다.
- <위키드>에 이어 <위키드: 포 굿>에서도 글린다의 의상이 여전히 눈부시게 빛난다. 의상은 폴 태즈웰이 직접 디자인했다.
폴은 올해 오스카에서도 <위키드>로 의상상을 받았다. 내가 살면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의상을 이 작품에서 다 봤다. (웃음) 폴 팀이 일하던 작업실은 거대한 창고 같았다. 글린다 사이드에는 분홍과 보라, 파란색으로 가득했고, 엘파바 사이드는 전부 검정색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차이가 있다. 마녀의 옷이라고 하면 다 같은 검정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엘파바가 사회에 점점 분노하거나 약해질 때 그 색깔도 조금씩 달라진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도 마찬가지다. 글린다는 에메랄드 시티에서 공인으로 우뚝 서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포지션에 따라 의상도 함께 확장한 것이다. 드레스 가격표는 일절 보지 않았다. 무조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원했다. 어떤 것도 이 가치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 학교가 주무대였던 <위키드>에 반해 이번에는 에메랄드 시티 전반으로 더 확장된다. 아트 프로덕션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했을 텐데.
이번 편에서는 광활함이 중요했다. 땅의 광활함. 엘파바가 를 부른 세트는 다소 특이했다. 거의 기초가 없었다. 온통 열린 공간이라 거꾸로 서 있든 똑바로 서 있든 그 위치를 정확하게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계단도 위아래 양방향으로 연결돼 있었다. 뭐랄까, 중력 자체를 거스르는 세트를 만들고 싶었다. 중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어서 엘파바가 오히려 안전감을 느끼도록. 또 엘파바가 홀로 숨어 지내는 둥지 같은 은신처도 새로 디자인했다. 거기에서는 엘파바가 무엇을 계획해왔는지, 지금까지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등 과거의 시간이 느껴지도록 했다. 가장 어려웠던 세트는 단연 을 부르던 장면. 따뜻하면서도 어쩐지 슬픔이 묻어나오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어떤 모습일지, 어떤 색감일지 상상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하지만 단연코 확신하건대 아름답다.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