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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 이야기를 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2025 TCCF 포럼 연사로 나선 <푸른 눈의 사무라이> 제인 우 감독
남선우 2025-11-20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히트 이전에 <푸른 눈의 사무라이>가 있었다. 2023년 11월 넷플릭스 공개 직후 높은 완성도로 호평받은 이 8부작 애니메이션은 2024년 에미상 5개 부문 후보로 올라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7세기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어 시리즈로서 거둔 이례적인 성과다.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제인 우 감독은 주인공 미즈를 닮았다. 백인의 피가 섞인 일본인 여성이 자신을 이방인으로 만든 사회를 향해 칼을 뻗듯, 8살에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소녀는 만화로 자기 세계를 쌓아올렸다. 만화책 가게까지 운영하다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할리우드에 발 들여 소니, 디즈니, 마블의 필모그래피를 20여년간 함께한 그는 첫 연출작을 등에 업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가 TCCF 연단에 서기 전 나눈 대화를 전한다.

- <푸른 눈의 사무라이> 시즌1이 공개된 지 2년이 지났다. 에미상 수상 후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까지 당신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내 삶은 크게 변했지만, 동시에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시즌2 작업에 바로 돌입했기 때문인가보다. (웃음) 그래도 <푸른 눈의 사무라이>가 이야기꾼으로서의 내게 새로운 문을 열어준 건 분명하다. 이 작품이 성공하면서 서구권 대중이 성인용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동양 시청자들은 늘 그래왔다. 내가 <푸른 눈의 사무라이>대본을 받자마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다.

-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할리우드에서 탄생한 에도시대 배경의 애니메이션이다. 마치 주인공 미즈의 태생처럼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셈이다. 제작 초기에 설득력 있는 기획안을 갖추기 위해 고민한 지점을 듣고 싶다.

내가 연출을 맡기 전에 마이클 그린, 앰버 노이즈미 작가가 이미 대본을 완성한 상태였다. 그걸 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부터 자문했다. 실사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나. 하지만 나는 매체마다 강점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애니메이션에는 우리를 예술적 여정으로 효과적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고 답했다. 나는 우키요에에서 받은 영감을 <푸른 눈의 사무라이>에 담고 싶었는데, 세계관을 설명하는 시각언어로 일본 미술을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개성은 실사로 표현하기 어렵다. 또 하나 내가 중요하게 여긴 건 미즈라는 인물 자체가 내포한 철학이다. 미즈는 동서양의 피가 섞인 존재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속 모든 영역이 이런 식으로 균형을 이뤄야만 했다. 연출적으로도 세르조 레오네,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두루 참고했다. 그렇게 작품 전체가 시청자에게 융합(fusion)의 감각을 선사하길 바랐다.

- 일부 한국 시청자들은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기본 영어 더빙이 아닌 일본어 더빙으로 오디오를 설정한 후 이 작품을 감상하니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응도 예상했나. 글로벌한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의 최초 타깃은 누구였나.

한국 시청자들의 그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 아주 흥미롭다. 우선 하고 싶은 이야기는, <푸른 눈의 사무라이>연출 제안을 받자마자 작품의 모든 면이 내게 밀접하게 와닿았고, 캐릭터의 얼굴부터 의상, 세계관, 액션까지 선명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피칭했고, 운 좋게 감독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불안이 엄습하더라. (웃음) ‘아니메처럼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디즈니 스타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진정하고 되뇌었다. ‘그냥 내가 보고 싶은 걸 만들자.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열명쯤은 있겠지. 그 열명이 이 작품을 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즉 처음부터 세계 시청자를 염두에 둘 수는 없었다. 그저 나와 우리 팀이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

- 제작진부터 성우진까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창작자가 <푸른 눈의 사무라이>에 참여했다. 어떻게 협업했나.

스태프 모두가 일본 문화를 진정성 있게 이해해야 했기에 내가 그들에게 직접 연기와 촬영 방식을 가르치며 함께 배워나갔다.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 대만에서 자라며 일본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이 작품이 단순한 재현이 아닌 ‘아시아계 미국인의 시선으로 번역된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미즈처럼 두 세계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머릿속 비전을 현실로 옮기기까지 수많은 의심과 신뢰가 교차했지만, 팀과 넷플릭스의 믿음 덕분에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결국 이 경험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신뢰’였다.

- <뮬란>부터 <쿵푸팬더><엘리멘탈><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아시아계 주인공을 내세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도 계보가 있다. <뮬란2>의 스토리보드 작가이자 <푸른 눈의 사무라이>감독으로서 이 진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동양 애니메이션과 서양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차이는 인물에 있다. 일본 아니메로 대표되는 전자는 큰 세계관이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라면 후자는 독특한 캐릭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캐릭터 묘사와 캐릭터의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싶었다. 현실감 있는 인간성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아시안 캐릭터들이 진지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이런 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한국이 이끌었다. 세계인이 집에 갇혀서 넷플릭스로 <오징어 게임>을 봤다. 넷플릭스와 <오징어 게임>이 미국인에게 자막을 읽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순간도 기억한다. 덕분에 서양 관객이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폭이 훨씬 넓어졌다. 나도 얼마 전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 더 많은 아시아의 이야기가 세계로 뻗어나가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 그 기회를 위해 국제 공동제작을 염두에 둔 아시안들에게 전하고 싶은 팁은.

비전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언어는 달라도 이미지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8살에 영어를 몰라 시각적으로 사고하게 되었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이미지를 토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결국 성공할 수 있다.

- 한편 최근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창작자들이 양가적인 입장을 품고 있다. 오랜 시간 스토리보드 작가로 일해온 당신의 관점은.

신중히 답해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에 AI의 발전은 막을 수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책임감 있어야 한다. 언젠가 AI가 일러스트나 스토리보드를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감각과 감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영화는 결국 ‘느끼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며, 우리가 AI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그 감각을 잃게 될 것이다. 인간이 예술을 통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느끼는 경험’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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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TAIC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