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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쓸모와 구원을 스스로 빚는 여자들, <당신이 죽였다> 배우 전소니
김소미 2025-11-20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의 은수(전소니)는 VIP 판매팀에서 일하며 일찍이 자립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어머니를 평생 방관했다는 죄의식과 함께 자신도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남동생을 보호해야 했던 멍에를 진 그는 전소니의 표현대로라면 삶에서 한번 “깨어지고 마는” 순간을 마주한다. 직장에서 비슷한 처지의 고객 자살 사건을 마주하고 오랜 친구 희수(이유미)의 가정폭력도 마주하면서 더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작품의 운전대를 쥔 외유내강의 인물을 연기한 전소니는 상대를 구하고 스스로 구원받는 일에 관한 섬세한 해석으로 <당신이 죽였다>의 행로를 올곧게 이끈다.

- 스스로 방관자라는 죄책감을 품은 동시에 가정폭력 환경의 오랜 피해자이기도 한 은수가 지닌 이중의 레이어가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작품 속 모든 여자들이 서로의 사정을 기민하게 알아채고 있다. 아는데 모르는 척할 순 있어도 ‘모르는’ 여자는 없다. 한편 그게 무엇이든 본인 일일 때는 쉽게 갇히고 주저앉기 마련이다. 은수는 그녀 자신이 피해자이자 방관자라는 두 가지 조건이 다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행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저 방관자였다면 이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피해자로서는 혼자서 용기를 내기 힘든 시간이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인생의 오랜 실마리를 스스로 풀어헤치는 국면이 <당신이 죽였다>의 시작이다. 전소니로서 은수의 마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간 순간이 있다면.

고향집에 돌아가 엄마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은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도망치듯 서울로 온 거다. 그러다 희수의 고통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은수를 이해하면서 나 자신도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나 또한 상황은 다르지만 은수처럼 항상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돼’라는 마음이 기저에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은수에 관해 일기를 써보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구나. 과거의 어느 한때 무언가에 용기를 내지 못했던 답답함과 한심함을 품고, 다시 한번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결코 똑같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 은수와 희수 중 전소니가 은수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배우 자신도 캐스팅 단계에서 감독에게 질문했을 법한데.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그동안 여러 출연작들을 두루 살펴봐주신 상태였는데, 겉으론 단단해 보이지만 안쪽은 연약한 사람 같아서 작품을 보면서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고 했다. 반대로 유미 배우는 약해 보이지만 강한 사람 같다고. <당신이 죽였다>는 약한 사람이 되레 강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에 나 역시 설득됐다.

- 희수의 남편 진표(장승조)를 죽이고 이주민 장강과 정체성을 바꿔치기하겠다는 대담한 전략은 모두 은수에게서 시작된다. 운전에 능숙하며, 퇴근 후엔 주짓수 도장에서 수련하는 등 남다른 생활력과 생존력을 지닌 인물이란 인상이다.

면허는 있는데 그동안 실제로는 운전을 못했다. <당신이 죽였다>에 은수가 운전하는 장면이 많다보니 이번엔 이걸 내가 진짜 해내고 싶어지더라. 몇번 연수받는 걸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크랭크인 3개월 전쯤 무리해서 차를 샀다. 처음엔 다들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는데, 작품 끝날 때쯤엔 나 자신도 마음 놓고 탈 정도가 됐다. 이렇게 몸을 써서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이거 하다 죽어도 돼’ 같은 마음으로 앞뒤 안 가리고 일단 해내버리고 싶어진다. 은수에겐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스스로에게 쓸모를 부여하고 안정감을 주는 행위가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크게 작동한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 은수한테는 가족의 집을 벗어난다는 게 평생의 큰 숙제였을 테고 나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곳에서 누군가를 함께 데리고 나올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는 마음도 간절하지 않았을까. 주짓수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몇번씩 테이크를 간 뒤에 잠깐 쉬는 동안엔 완전히 기절하듯 잠들곤 했으니까.

- 격정과 소강상태를 오가고 신체적·감정적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고강도의 폭력이 행해지는 장면들을 이유미 배우와 함께 통과했다. 현장에서 두 사람의 호흡은 어땠나.

어느 날 유미가 “언니는 무거운 장면을 준비할 때 현장에서도 그런 무드로 있는 편이야?” 물어보더라. 아니라고 했더니 유미가 곧장 밝게 “나도 아니야!” 하고 신난 강아지처럼 대꾸했다. (웃음) 연기할 때는 충실히 하되 작업 자체를 즐겁게 만들고 싶기도 했는데, 유미 배우와 그 지점이 잘 맞아서 행운이었다. 가끔 헷갈리거나 용기가 안 나는 순간이 오면 서로에게 물어보고 확신을 주기도 했다. “내가 너를 믿게 해줄게. 우리 서로가 은수, 희수가 될 수 있게 해주자.”

- <당신이 죽였다><소울메이트>처럼 원작 소설도 잘 알려진 경우에 배우로서 이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는 편인가.

<당신이 죽였다>는 내게 운명적이었다. 정보를 전혀 모르고 대본을 봤는데, 곧장 생각나는 책이 있어서 내가 먼저 “혹시 이거 <나오미와 가나코>예요?” 물어봤다. 소설을 읽고 언젠가 영상화된다면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정말 내게 당도한 것이다. 작품 제의를 받기 전에 독자로서 원작을 이미 읽었던 사례는 <소울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달랐는데, <당신이 죽였다>는 오쿠다 히데오 소설을 마치 퍼즐 짜맞추듯 읽으면서 내가 보기에 나오미와 은수 사이의 공통점이라 느껴지는 부분만 참고하고 조합하는 식으로 캐릭터 해석에 영감을 얻었다.

- 희수를 구함으로써 은수 자신이 구원받는다. 은수의 입장인 전소니에게 <당신이 죽였다>는 어떤 이야기인가.

글과 말로서는 절대 배울 수도 가르쳐줄 수도 없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삶의 어떤 시기에 반드시 스스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은수는 결국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갔고, 그 안에서 겪은 것들을 통해 깨우치고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나와 은수에게 <당신이 죽였다>의 여정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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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