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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마음에 꽂아둔 책갈피들, <너와 나의 5분> 배우 심현서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5-11-04

경환(심현서)은 글로브의 <DEPARTURES>를 좋아한다. “사진 속 두 사람”을 그리는 노래 가사처럼, 그는 전학 간 학교에서 어른이 되어도 바래지 않을 추억을 현상한다. 그 장면을 함께 채운 이는 우정 이상의 애착을 느끼게 하는 짝꿍 재민(현우석). 그래서 경환에게는 재민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간다.

거기에 먼저 귀 기울인 배우 심현서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데뷔해 단편 <유월>(2018)로 영화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적이 있다. 자유로이 춤추던 어린이는 사랑에 아파할 줄 아는 소년으로 자라 첫 장편영화 주연이라는 기회를 잡았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안다는 신예는 “성인이 되기 전에 이런 일을 경험할 줄 몰랐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 오랜 사랑을 받은 단편 <유월>의 주인공이 이렇게 자랐다니 반갑다. 작품이 얻은 호응을 기억하고 있나.

촬영할 당시에만 해도 내가 배우라는 의식이 별로 없었다. 영화제에 다니면서 비로소 내가 찍은 영화가 많은 분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독님이 유튜브에 작품을 업로드할 때만 해도 우리끼리는 조회수가 1만회를 넘길 수 있을지 궁금해했는데, 알고리즘에 힘입어 많은 분이 영화를 보게 돼 정말 놀랍다.

- 2025년 10월 마지막 주를 기준으로 700만회 조회수를 기록하는 중이다.

그 정도 반응을 나도 체감한 게,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유월>을 보여주신다더라. 나도 중학생 때 선생님이 교실에서 <유월>을 틀어주시는 바람에 좀 부끄러웠다. 반 친구들과 함께 내가 연기하는 걸 보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 아, 나 그때 너무 풋풋했는데! (웃음)

- 그보다 어릴 적에 “내 인생에 항상 수식어로 남을 것 같다”고 말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공연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빌리 엘리어트>를 하기 전에는 내가 계속 발레리노의 길을 걸을 줄 알았는데, 연기와 발레가 결합된 뮤지컬 덕분에 처음으로 발레리노의 길과 배우의 길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다 <유월>을 만났고, 좀더 다양한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배우의 길에 발을 들였다.

- 그 길목에서 만난 첫 번째 장편영화가 <너와 나의 5분>이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나.

우선 경환이라는 인물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나는 외향적이고 쾌활한 데 반해 경환이는 섬세하고 조용하다. 나와 다르기에 표현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이 정말 재밌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결말을 읽자마자 무조건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꼭 한번 오디션 보고 싶어질 정도로 크게 와닿았다.

- 2001년 대구라는 배경이 2007년생 수도권 출신 소년에겐 멀게 느껴졌을 법도 한데.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무척 멀게 느껴졌는데, 소품팀, 미술팀, 제작팀에서 엄청난 현장을 만들어주셔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사투리는 어려웠다! 19년 살고 이렇게 말하기 그렇지만, 내가 서울 토박이다. (웃음) 처음에는 대구 출신인 감독님과 연습했고, 촬영 직전에는 (현)우석이 형과 일주일에 세번씩 수업을 들으며 친해졌다.

- 시대상을 보여주는 소재 중 하나가 일본 대중문화다. 경환은 와레즈에 직접 음원을 업로드할 정도니 꽤 깊은 덕질을 하는 소년인데, 그에게 글로브와 일본 만화는 어떤 의미였을까.

해방구 아니었을까. 현실에서 경환은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에 살고 있다 보니 온라인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와레즈가 있지 않을까. 나는 픽사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는 대사를 다 외우는 한편 전 시즌을 대여섯번씩 볼 정도로 좋아한다. 내게도 약간의 덕후 기질이 있으니 장르는 달라도 경환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 경환은 음악 취향만큼이나 자신의 성 지향성도 일찍 깨달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경환이는 진짜 강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사회에서, 경환이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소신껏 지키지 않았나. 나는 과연 경환이처럼 솔직했나 돌아보면서 그에게 배운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럼에도 경환을 특별히 다른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겉으로는 약해 보여도 내면이 단단하고 목표가 확실한 친구로 대하고 싶었다.

- 그런 경환이 재민이와 있을 때만큼은 소년다워진다. 재민이에게 이어폰 한쪽을 빼앗기는 순간 마음까지 빼앗기니까!

엔지가 조금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메라 타이밍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노래를 들으면서 촬영했기 때문에 막상 몰입은 잘됐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겠다고 계획하기보다는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심쿵’ 할 수 있도록 집중했다.

- 재민과 가까워지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던 경환이 중간고사 1등을 하면서부터 급우들의 대우가 확 달라진다. 그 장면이 유쾌한 뮤지컬 시퀀스처럼 연출되었는데, 합을 맞추는 성취감이 컸을 듯하다.

그때 경환이의 감정도 재밌지 않나. 교실 구석에만 있던 친구가 1등 했는데 기쁜 티도 안 내니 좀 멋있기도 하고. 나는 재밌었는데 함께한 배우들은 엄청 힘들었을 거다. 타이밍 맞추느라 거의 30 테이크를 갔다. 현장의 모든 형, 누나들이 계속 활기를 잃지 않고 파이팅을 외쳐줘서 울컥했다.

- 그러다 경환은 재민이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후로 고립된다. 혼자가 되는 일에 익숙해 보이는 경환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경환이는 언제나 의연하지만 나는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다. 뺨을 맞을 때도, 우유갑을 맞을 때도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감독님은 내가 경환이에게 이입해 감정이 올라올 수는 있겠지만 경환이라면 그 순간에 울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그 말에 설득돼 눈물을 참았다. 그러면서도 경환이가 느낄 법한 감정까지 끌고 올라가지 못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경환이라면 그렇게 올라온 감정에도 무너지지 않으면서 버티리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 결국 경환과 재민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관계를 매듭짓는다. 경환이에게 재민은 어떤 존재로 남을까.

경환이에게 재민이는 고등학교 시절의 책갈피 같은 친구였을 것 같다. 동질감, 동경, 선망, 설렘까지, 10대 남자 청소년이 느낄 법한 감정을 다 느끼게 해준 친구니까. 그걸 다시 확인하는 현재의 경환을 온주완 선배가 연기해주셨는데, 덕분에 경환이라는 인물이 완전해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인상 깊었던 엔딩을 실제로 보니 더 좋더라.

- 엔딩의 경환은 40대인데, 심현서 배우는 이제 스무살을 눈에 두고 있다. 무엇을 기대 중인가.

당연히 작품 활동을 많이 하고 싶다. 작품이 없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은데,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건 놀이공원 아르바이트다. 손님들이 오기 전에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더라. 그리고 대학에 합격한다면 친구들과 과제하다가 밤을 새우고도 싶다. 가족들과도, 혼자서도 여행을 가보고 싶고….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데, 20대에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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