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계기로 미야케 쇼와 심은경은 처음 만났다. 일본 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접한 심은경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미야케 쇼에게 적극적으로 대담을 청했다. 서로를 향한 창작적 호기심으로 맺어진 인연이 느슨해지기 전에 먼저 팽팽히 잡아당긴 쪽은 미야케 쇼 감독이다. “내가 읽어온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 캐릭터였지만 어느날 심은경 배우가 번뜩 떠올랐다. 그녀의 국적, 특유의 분위기나 기질 등을 극속에 담으려 했고 영화가 크게 앞으로 나아갔다.” 심은경이라는 개성 강한 옷을 입은 작가의 방황기에 관해 미야케 쇼는 “딱히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 사람이 어딘가 저 너머로 다녀오는 이야기”라고 시구처럼 축약했다. 머물던 곳에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여행과 나날>은 <연연풍진>(허우 샤오시엔)의 아름다운 한 장면에 버금가는 설원의 터널신을 통과해 우리를 소박하면서도 영화적인 곳으로 데려간다.
- 우선 로카르노영화제에서의 낭보를 축하드린다. 심은경 배우가 무대 위에 한국어 통역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또박또박 우리말로 소감을 남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심은경 일본어로 공식적인 행사를 이어가던 상황이었는데 황금표범상 수상 후 인디펜던트 심사위원상까지 받게 되었을 때,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내 나라 언어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의미를 옮겨줄 누군가가 없다고 해도 요즘은 모든 것들이 금방 전해지는 시대니까 조금 꿋꿋해지기로 했다. <여행과 나날>처럼 굳이 언어적 의미로 전달되지 않더라도 진심이 통할거라 믿어보고 싶기도 했다. 내게 가장 밀착된 언어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 쓰게 요시하루의 두 만화를 각색한 작품인데 <해변의 서경>은 극중극으로, <눈집의 벤조>는 극중극이 끝난 뒤 여행을 떠난 주인공의 실질적인 여정에 녹아들었다. 두 원작이 내러티브에서 차지하는 위치, 혹은 쓰임에 대해서 고려한 바는 무엇인가.
미야케 쇼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는, 일본에는 많은 만화가 있지만,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화만의 표현이란 것을 추구하는 매우 세련된 작품들이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치 이 장르를 처음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이를테면 ‘만화라면 이런 표현도 가능하구나!’하는 성질을 영화만의 것으로 옮겨보고 싶었다. 영화적인 놀라움, 당황스러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움직임들 말이다. 쓰게 요시하루의 두 만화를 재해석하면서 한편을 극중극이라는 액자 구조로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영화를, 혹은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 그래서인지 원작 만화만큼이나 영화적 출처도 그려보게 한다.
미야케 쇼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는 항상 머릿 속에 있다. 이번 작업에서는 일본 영화뿐만 아니라 에릭 로메르의 바캉스 영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1950년대 영화들을 떠올리곤 했다.
- 한국어 내레이션의 표현이 담백하면서도 유려해서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배우와 어떻게 협업 했나.
미야케 쇼 영화의 모든 촬영이 끝난 뒤 편집 단계에서야 내레이션의 필요를 느꼈다. 어느날 한창 편집 중에 은경 씨가 편집실에 왔다. 틈틈이 써 둔 내레이션을 건넸는데,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한국어로 번역해 읽어주었다. 그 목소리를 가녹음본 삼아서 내레이션 내용을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하고 다듬어갔다. 최종 후시녹음도 은경씨가 직접 번역해 읽은 것이다.
심은경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이메일로 소통하면서 이는 누구인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논의했다. 이 작업이 후반작업에서도 도움이 됐다. 각본가라는 직업, 글쓰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가면서 감독님과 한강 작가님에 관해서 이야기했던 기억도 난다. 한강 선생님의 낭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의 내레이션을 녹음할 때 다시 찾아들으면서 감정을 잡아나갔다
- 이는 감정과 느낌을 언어화할 때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에 대해 고찰한다. “언어에 쫓긴다”고 표현하는 감각이 감독 자신에겐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미야케 쇼 말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리고 대사라는 중요한 요소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그 안에 담긴 뛰어난 대화들에 감동받기도 한다. 하지만 말이 생겨나기 이전의 감정, 그것이 품고 있는 생생한 ‘놀람’을 액션으로 옮기는 쪽에 좀더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령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하기 이전에 이미 아름다움에 반응한다. 말이 튀어나오기 전, 찰나 동안에 보존되는 감정의 움직임이 있고 영화는 그것을 포착할 수 있다. 첫 말이 튀어나올 때까지 1초 혹은 몇 초간을 굉장히 늘리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아닐까.
- 그러다 이는 벤조의 집에 머무는 사이 뜻밖에도 잘 먹고,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전보다 조금 산뜻한 몸짓으로 글을 쓰게 된다. 초반에는 조금 연약하게 들렸던 목소리가, 심은경 배우가 한국어로 말할 때처럼 보다 힘있게 변한다.
미야케 쇼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다. 우선 한번 말에서 멀어지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시간을 경험한 뒤 최종적으로는 주인공이 펜을 들고 말과 다시 만난다.
심은경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주로 일본어로 소통을 하는데 어쩌다 내가 한국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톤이 달라진다고 하더라. 감독님의 관찰이다. 그래서 그 부분을 캐릭터의 심경과 목소리에서 좀더 드러내보고 싶었다. 내레이션의 독백 대사들을 녹음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후반부에는 일부러 한국어로 애드리브를 더한 적도 있다. 한밤의 소동 이후에 경찰들이 벤조의 집에 찾아오는 장면인데 이가 놀라면서 잠에서 깨서 한국어로 ‘뭐야’라고 중얼거린다. 자신도 모르게 모국어가 튀어나오는 순간을 발견해서 재미있었다.
- 주인공 이처럼 심은경도 일본영화계에서 일본어로 연기하는 한국인 배우로서 언어에 대한 고민을 거쳤을 터다. 캐릭터와 사적으로 공명한 지점도 있었을까.
심은경 타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연기하면서 그녀가 원하는 만큼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 사람들 앞에 마냥 자신감 있게 나서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표면적으로는 작가적 슬럼프에 빠져서 설원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지만, 실은 이가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캐릭터와 나의 삶이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에서 영화를 만들고 함께하는 일이 운명 혹은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 속에서 새롭게 깨달음을 얻었다. 영화는 빛의 생물같다.
Director’s Box
미야케 쇼의 영화는 풍경의 정조와 내면의 정념을 포개어 왔다. 워크숍 영화의 생생함과 친밀함으로 필모그래피를 열었던 감독은 신작 <여행과 나날>에 이르러 한층 우아하고 정제된 숏의 풍모를 선보인다. <여행과 나날>은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을 찾기 전 78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