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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4호 [인터뷰]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된다면, <프랑켄슈타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정재현 사진 최성열 2025-09-20

세상에 공개된 적 없지만 어쩐지 이미 존재하는 것 같은 영화들이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이 그렇다. <프랑켄슈타인>은 그가 평생 천착해온 괴수 호러의 고전이자 그의 모든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평자들이 줄곧 인용해온 텍스트다. 델 토로 또한 여러 차례 괴물에 매혹된 첫 순간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손꼽았고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하려는 포부를 밝혀왔다. 어쩌면 델 토로와 그의 팬 모두의 숙원 사업이었을 <프랑켄슈타인>이 마침내 올해 11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씨네21>이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단둘이 만났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아니 이상해서 아름다운 그의 세계를 함께 탐험해보자. 추신. 올해 영화제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놓친 관객은 한탄하지 마시길. <프랑켄슈타인>은 넷플릭스 공개 전 10월 일부 극장 상영이 예정돼 있다. 델토로와의 긴 문답은 <프랑켄슈타인> 개봉에 맞춰 <씨네21>에 심층 소개될 예정이다.

- <프랑켄슈타인>이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아주 이상하다. 이 영화가 마침내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동시에 이토록 폭력적인 시대에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관객들을 치유할 수 있길 바라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용서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여기에 인류애는 물론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까지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그런가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요즘 매일 감정이 북받친다.

- 보통 소설을 영화화하면 원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 중 후자를 영화 포맷에 맞게 각색하기 마련인데, 감독님의 <프랑켄슈타인>은 소설의 형식을 유지한 채 내용을 각색했다. 원작 그대로 1부는 빅터의 이야기, 2부는 피조물의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어떻게 세웠나.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은 빅터와 피조물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건네기 때문에 아름답다. 7살에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1931)을 처음 접했고, 11살에 메리 셸리의 소설을 읽었다. 읽자마자 누구도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할 때 소설의 미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등장한 여러 영화판 <프랑켄슈타인>도 이 구조를 따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른이 되어 영화감독이 되면 꼭 이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메리 셸리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날을 오랫동안 바라왔다. 메리 셸리의 소설은 존 밀턴의 서사시인 <실낙원> 속 아담과 밀접한 사유를 건넨다. 신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 소설 속 빅터와 피조물은 마치 거울상처럼 대칭을 이루고, 빅터는 자신의 피조물을 혐오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피조물과 동일시하다 끝내 자기혐오에 잠식된다. 이 심리적 경로가 영화 속 빅터(오스카 아이작)에게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눈여겨본다면 빅터와 피조물이 거울에 함께 비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 걸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스카 아이작에게 피조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버전의 영화도 고려 중이라고 전한 적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피조물의 형상은 사실 빅터의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고, 그렇다면 진짜 괴물은 곧 빅터 그 자신이 된다. 어린 시절 빅터에게는 온갖 증오가 덧씌워졌다. 동시에 어머니의 죽음을 건강하게 애도하지 못한 무력감이 빅터 안의 괴물을 만들었을 터다. 반면 피조물(제이콥 엘로디)은 탄생 당시에는 아기처럼, 순수 그 자체였다. 우리도 태어날 땐 완벽한 존재였지만 삶이 조금씩 우리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나. (웃음) 그런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누구나 ‘나의 이야기’라며 공감할 수 있는 텍스트다. 내 경우엔 틴에이저, 정확히는 11살 이후부터 <프랑켄슈타인>을 ‘나의 이야기’로 여겼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18살에 집필해 19살에 출판했다. 심지어 메리 셸리는 16살에 퍼시 셸리와 야반도주해 가정을 꾸렸다. 우리 둘 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 청소년기에 벌어진 셈이다. 청소년들이 가슴 속에 품는 부조리나 의문을 두고 부모들은 “사춘기가 다 그렇지 뭐”라며 눙치지만, 실상 청소년기야말로 인간이 가장 현명할 때다. 세상의 모든 이상한 10대는 저마다 총명하다. 그들이 세상의 진실을 말하는 방식이 어른들의 선호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열몇 살 난 우리집 아이가 사춘기라 그런지 날 싫어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오. 당신 아이는 마침내 당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들려주는 거예요.”라고 되받아치고 싶다.

- 피조물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감독님의 괴물들을 이야기해볼까. 델 토로 월드의 괴물은 언제나 인간 일면에 대한 메타포가 아닌 괴물 그 자체로 그려지며 이야기를 성립한다. 이는 곧 감독님 작품의 일관된 주제의식인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를 관통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괴물을 괴물답게 그리려는 작가적 비전을 어떻게 견지하나.

어떤 영화든 괴물을 설계할 때마다 디자인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예컨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의 어인(더그 존스)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본질적인 무언가를 만들려 했다. <크림슨 피크>(2015) 속 유령들은 빨강 팔레트 안에서 악몽처럼 일그러졌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부패한 제도나 순수의 타락을 환기하려는 의도였다. 스토리텔러로서 근래에는 선인의 반대급부로 악인이 등장하는 서사보다 인간의 악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나이트메어 앨리>(2021)의 스탠턴(브래들리 쿠퍼)나 <프랑켄슈타인>의 빅터 모두 돌이켜보면 작품의 히어로인 동시에 빌런이니까.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속 제페토(데이비드 브래들리)조차 피노키오(그레고리 만)을 이해하지 못해 무례하고 잔혹하게 굴지 않나. 나이가 예순쯤 되니 전과 다른 방식에 흥미롭게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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